[사람과 기업]이단형 정보통신대학 교수

[사람과 기업]이단형 정보통신대학 교수

 이단형 한국정보통신대학(ICU) 교수는 산을 좋아한다. 거의 매주 북한산을 오른다. 그런데 올라가는 코스가 매주 똑같다. 가끔 사람들이 “지겹지 않냐”고 물으면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이라며 웃는다.

 이 교수의 삶도 그러하다. 지난 36년간을 오로지 소프트웨어(SW) 하나만을 보고 살아왔다. 73년 시스템공학연구소에 입사하면서 SW와 처음 인연을 맺은 이래 SW와 함께 울고 웃어왔다.

 “SW 때문에 30여년간을 역동적으로 살아왔다”고 털어놓은 그는 “SW야 말로 우리나라 경쟁력의 핵심이고 3만달러 시대 견인차”라고 강조했다. 굵직굵직한 역사의 현장에는 그가 개발한 SW가 있었다. 장영자·이철희 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끓던 시절에는 금융실명제 기반이 되는 SW를 개발했고, 대전엑스포와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운영 전산시스템을 탄생시켰다.

 최근 이 교수는 또 ‘일’을 냈다. ‘SW 프로덕트 라인(SPL)’이라는 세계적으로 중요성이 커지는 SW의 국제 표준을 총괄하게 됐다. 사실 SPL 국제표준을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이미 2003년부터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작년 5월 본격 ‘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SW 국제 표준을 주도하는 ‘ISO-ICE/JCT1’이 헬싱키에서 총회를 열고 요구공학 표준팀을 만들었는데 그는 여기 공동의장을 맡았다. 이후 SPL을 비롯해 3가지 국제표준 후보를 정하고 이중 가장 중요한 SPL은 그가 주도하기로 마음 먹었다. 세 가지 다 잡고 있으며 견제가 너무 심하니 가장 중요한 것만 잡고 나머지 두 개는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후로도 험난한 과정이 계속됐다. 일부 국가는 이 교수에 대해 노골적으로 딴죽을 걸었다. 하지만 그는 한 나라 한 나라 차근차근 설득해갔다. 이미 LG에서 1000명이 넘는 인력을 다스려본 그였다. 마침내 6월 15일부터 9월 15일까지 장장 3개월간 30개 이사국의 투표가 진행됐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30개국 중 21개국이 투표해 15개국이 찬성표를 던졌다.

 그 때의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이 교수는 인터뷰 내내 SPL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IT는 인정받고 있는데 SW는 갈길이 멉니다. SPL은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제조업과 SW산업을 접목시키는 데 필수적인 기술입니다. 우리의 제품과 서비스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SPL 기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SW의 체계적 재사용을 목적으로 하는 SPL은 80년대에 태동한 기술이지만 아직 선진국도 한참 연구가 진행중이다. 이런 점에서 향후 3년후 쯤 첫 작품(표준)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SPL의 국제 표준을 우리가 주도하게 된 것은 국가적으로도 행운이다. 이 교수는 SPL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수백억 프로젝트였다면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면서 “활용여부에 따라 수백조원은 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에게 우리의 SW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SW 강국이라고 일컫어지는 인도, 이스라엘, 아일랜드를 보십시오. 이들은 탄탄한 내수가 없이도 수출로 잘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일부 SW만 강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전반적으로 SW가 강한 미국과 EU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30여년간 SW를 애인 삼아 달려온 그는 “후회와 아쉬워 할 시간도 없었다”며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면서 “인도도 SW 강국이 되기까지 50년이 걸렸으므로 우리도 충분히 SW 강국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방은주기자@전자신문, ejb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