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근기자의 고수에게 배운다]아이모(하)

지난 수업을 받고 나서 2주 가량의 시간이 흘렀지만 역시나 연습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모’를 즐긴다는 한 지인의 휴대폰으로 간간히 접할 수 있었지만 직접 경험하며 부딪히는 것이 실력 향상과 레벨업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부의 간곡한 당부를 실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복싱에는 스파링과 거의 흡사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쉐도우 복싱이라는 훈련이 있다. 가상의 상대를 머릿 속에 떠올리며 허공을 향해 펀치를 날리는 방식으로 홀로 스파링을 하는 훈련이다. 연습할 상대와 공간(?)이 없는 기자도 아이모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마인드 콘트롤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사부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도 지난 수업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가상의 쿠이와 불도저를 사냥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는 사부를 기다리는 동안에 실제 연습모드에 돌입해 사냥에 온 힘을 기울였다. 30분 정도 지나 사부가 약속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수업을 마치고 1시간 가량 연습에 몰두했던 기자는 레벨 5였다. 훈련 상황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사부가 칭찬을 해주었다. “레벨업을 하셨네요?” 사부의 칭찬에 어린시절 담임선생님이 공책에 꾹 눌러주신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은 어린아이마냥 즐거워했다.

“계속 숲에서 사냥을 할 생각이었는데 늪지로 가도 되겠어요.” ‘흠 늪지라…’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습하고 음침한 느낌의 늪지를 머릿 속에 그렸다. 하지만 ‘아이모’와 같은 밝은 분위기의 작품에선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런 불필요한 상상에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을 때 사부가 길을 제촉했다.

사부를 따라 간 곳에는 쿨린박사가 있었다. 그는 연구에 필요한 깃털과 책자를 가져다 주라는 부탁을 했다. 무엇을 연구하는 인물일까? 궁금증이 일었다. MMORPG에서 스토리에 관한 궁금증을 무시한 채 지나가는 것은 재미를 반감하는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기에 질문요청의 손을 들어올렸다.

‘아이모’의 세계는 윙프릴 섬이다. 이 섬은 고대에 윙족이 살던 곳으로 윙족은 날개를 가지고 하늘을 자유로이 날 수 있는 종족이었다. 쿨린박사는 이러한 윙족의 문명을 연구하는 인물이다. 때문에 그에게 있어 깃털과 책자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인 것이다. 윙족의 문명에 궁금증에 빠른 걸음으로 늪지로 향했다.늪지로 입장하자 사부는 지난 번에 불도저의 습격에 대해 미안했다는 말과 함께 여러가지 당부를 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얀거미를 조심하라는 팁이었다. 지난 번에 불도저에게 호된 신고식을 치렀던 터라 사부의 말을 명심 또 명심하고 나서 사냥을 시작 했다.

한 동안의 사냥을 마치고 쿨린박사를 찾았다. 어떤 것을 내줄까?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었지만 어이없게도 돌아온 것은 꽝이었다. 강화아이템이 아닌 다른 저급 아이템을 받은 것이다. 사부의 말에 따르면 유난히 꽝이 많아 유저들 사이에선 쿨린박사를 소재로한 소설까지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열심히 사냥하고도 별다른 수확이 없자 다른 사냥감을 찾자고 사부에게 제안했다. 하지만 사부는 꽃과 거미를 계속 사냥하라고 말했다. “깃털과 책자를 가져다 주면 무기와 방어구를 인챈트 할 수 있는 강화아이템을 얻을 수 있어요. 계속 플레이하다 보면 이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장시간 사냥 끝에 쿨린박사를 다시 찾았다. 하지만 돌아온것은 또 다시 꽝이었다. 나도 모를 오기가 생기며 사부와 함께 사냥을 계속했다. 하지만 연이어 꽝을 내 준 쿨린박사 탓인지 자신도 모르게 사냥을 하고 나서 아이템을 줍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한창 꽃 모양의 몹을 사냥하고 돌아서려는 찰라 사부의 질책이 이어졌다. “그건 버리긴 너무 아까운 건데…” 뒤를 돌아보니 뒤쪽에 이상하게 생긴 씨앗이 떨어져 있었다. 사부는 이 씨앗을 가지고 있으면 나중에 여러모로 많은 덕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씨앗의 정체는 ‘신비한 씨앗’. 레벨 10이 됐을때 던전의 3∼4층을 가로막고 있는 석상을 통과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또 고레벨 유저에게 이를 팔면 많은 이문을 남길 수도 있다. 이 후에도 한 동안 사냥을 계속했고 결국 깐깐한 쿨린박사에게 여러가지 강화아이템의 행운을 얻었다.그 후에도 한동안 늪지에서 계속 사냥을 했다. 특히 검은색 거미를 많이 사냥했다. 사부의 설명에 따르면 검은색 거미를 사냥해 거미줄 100개를 모아 마을 재봉사에게 가져다 주면 5슬롯 가방을 만들어 준다고 했다.

때문에 사냥을 하는 도중 인벤토리 창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을 해 왔기에 검은색 거미를 계속 사냥했다. 사부의 당부대로 하얀거미를 요리조리 피하며 사냥했다. 하지만 하얀거미를 계속 피해다닐 수는 없었다. 결국 하얀거미와 혈투를 벌인 것. 하지만 결과는 역시나 패배의 쓰라림이었다. 레벨에 맞는 사냥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계속된 사냥에 사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부도 이를 알고 있다는 듯 “더 많은 곳에 다녀봐야 하는데…”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리고 나서 무언가 결심을 한 듯 해안가로 인도했다.

사부는 “해안가는 레벨 10정도 돼야 안심하고 입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곳에서 샌드맨과 같은 강력한 몹을 상대해야 더욱 빠르게 성장할 수 있으니 앞으로 레벨을 올리고 나면 이곳에서 사냥을 하라”고 당부했다.

사부와 헤어질 시간이 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새로운 세계에 길라잡이 역할을 해 준 사부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사부도 “이 정도면 거의 모든 것을 사사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제부터는 혼자서도 잘 해낼 것”이라고 용기를 북돋어 줬다. 또 “언젠가 더 넓은 대양을 향해 함께 나갈 수 있을 날을 기대한다”는 말을 남기며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김명근기자 dionys@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