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게임의 대표적인 역기능 중 하나인 ‘과몰입’에 대한 대안으로 이용 시간을 제도적으로 제한하자는 이른바 ‘셧다운(shut down)제’를 근간으로하는 입법화가 본격 추진돼 논란을 빚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은 최근 ‘셧다운제’를 핵심 내용으로한 ‘정보통신서비스의 중독 예방 및 해소에 관한 법률’(안)을 단독 발의했다.
김의원측의 의도대로라면 올해 안에 입법 작업이 완료, 유예 기간을 거쳐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피로도 시스템 등 자율적인 셧다운제가 이미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데다 이 제도가 산업 및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며 법제정에 보다 신중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김희정의원이 최근 발의한 ‘정보통신서비스의 중독 예방 및 해소에 관한 법률’의 핵심은 청소년이 장시간의 인터넷·게임을 할 경우 그 법정 대리인이 요청과 동의에 따라 이용 시간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것.
2004년말 ‘셧다운제’가 처음 불거져나올 당시 자정 이후에 아예 온라인게임 서비스를 차단하자는 전면 셧다운제에서 한발자욱 물러선 일종의 ‘절충안’인 셈이다. 발의안은 또 장시간 인터넷·게임 이용시 컴퓨터 화면에 경고 메시지를 표시, 이용 시간을 인지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김의원측은 입법 배경과 관련 “온라인게임 등 인터넷 중독으로 인해 적지않은 청소년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고 청소년중 15% 이상이 인터넷 중독 위험군에 분류될 정도여서 강력한 예방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렇다면, 김의원측의 주장대로 현재 청소년들의 온라인게임 과몰입 현상이 날로 심각해져 사회 문제화되고 있는 현실을 십분 고려한 ‘셧다운제’가 논란을 빚고 있는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현재 ‘셧다운제’ 논란의 중심엔 이 법의 적정성과 효용성 여부가 깊게 자리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을 위한다는 법안의 근본 취지에는 대부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이를 굳이 법까지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것.
청소년들의 심야 PC방 이용 시간 제한, 피로도 시스템 도입 확산 등 이미 제도적으로 ‘셧다운제’ 효과를 낼만한 방안들이 속속 도입되고 있는 상황이란 점에서 별도 법제정은 효용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업계는 특히 게임 서비스 업체 스스로 얼마든지 자율 규제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 최근 게임업계는 일정 시간 이상 게임을 이용하면 접속을 차단하는 피로도시스템을 잇따라 도입하는 추세다. 주당, 연령별 게임시간 등을 조절하거나 보호자가 게임사에 요청해 자녀들의 게임시간을 제한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는 곳까지 나온 실정. 심지어 대부분 이용자층이 성인인 MMORPG 서비스업체들까지 과다 이용을 제한하는 상황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과몰입 등 게임역기능이 사회 문제화되고 ‘바다이야기 사태’ 등으로 게임에 대한 이미지가 실추돼 게임업체들도 최근들어 자발적으로 10대 청소년들의 지난친 몰입을 컨트롤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면서 “자율 규제로도 충분한데 부득불 법을 만들어 강제화하겠다는 것은 과잉 입법, 국회의원들 한건(?)을 위한 입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관련 법안을 국회 제출한 김희정의원측은 물론 일부 시민 단체들은 “우리보다 후진국인 태국이나 중국에서도 셧다운제를 도입하고 있는마당에 더이상 청소년들을 인터넷 게임의 중독에서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며 “셧다운제를 포함한 다양한 타율적 규제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맞선다.온라인 게임 이용 시간을 법으로 차단하는 ‘셧다운제’가 도입되는 것은 당장엔 관련 산업에 적지않은 충격파를 던져주겠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청소년들의 게임 과몰입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함으로써 건전한 게임문화가 조성되고, 나아가 게임에 대한 이미지가 제고돼 시장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게 긍정론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셧다운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쪽의 입장은 확연히 다르다. 비록 성인들이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하지만, 현재 게임 이용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10대 청소년들의 이용 시간을 어떤 식으로든 제약한다면 시장 위축과 매출 감소가 불가피해 게임산업 발전에도 적지않은 타격을 줄 것이란 얘기이다.
문화부가 발간한 2006게임백서 중 ‘플랫폼별 이용자 동향’에 따르면 국내 온라인게임 이용자중 19세 이하 청소년들의 비중이 무려 29.8%에 달한다. 게다가 이는 2005년도를 기준으로 조사한 결과이다. 최근 온라인 게임 이용자의 저연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거의 40%에 육박할 것이라는게 업계의 추산이다.
결국 온라인게임 유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10대들의 이용을 법으로 막는다는 것 자체가 게임 시장과 산업에 상당히 부정적 효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용 제한시간을 얼마로 정하느냐에 상관없이 셧다운제 관련법이 제정되는 것만으로도 시장에 악재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게임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선입견이 잔존하는 상황에서 일단 법이 제정된다면 향후 관련법 개정에 따라 산업의 뿌리가 자주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현재로선 셧다운제를 둘러싼 논란의 양측 대립이 워낙 팽팽해서 법제정이 순탄치는 않을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희정 의원측이 ‘부분 셧다운제’로 수위를 대폭 낮춰 발의를 한데다 부처간의 이권 다툼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의원입법 형태를 띠고 있지만, 게임업계를 비롯한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이 예상보다 만만치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정보문화진흥원등 심지어 관련 기관들조차 “필요하다면 법제정 보다는 게임산업진흥법 등 관련법속에 녹여야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변수도 많다. 게임산업협회를 비롯해 온라인 게임업체들 스스로 피로도시스템을 더욱 강화하는 등 자정 노력을 가속화할 경우 법제정의 명분이 크게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발의 의원인 김희정의원이 게임관련 국회 상임위인 문화관광위원회가 아니라 과학기술정보통신위 소속이라는 점도 향후 법제화 과정에서 정작 국회 내부에서부터 불협화음이 나올 수 있는 변수”라고 말했다. 이 법이 ‘행복추구권’ ‘평등권’ 등 헌법정신에 위반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우철 동양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일부 국가에서 심야시간에 사용을 제한하고 있지만, 이용시간을 제한하는 경우는 없다”며 “국내 인터넷 산업 규모와 향후 가능성을 감안할 때 셧다운제 도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게임의 과몰입 현상이 법으로 막자는 움직임이 나타날 정도로 심각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전제하며, 그렇다고 청소년들의 대표적인 놀이문화이자 우리 경제의 차세대 성장동력은 온라인게임 이용을 물리적으로 막는다는 문제는 여러 각도에서 보다 입체적으로 심도있는 관찰과 연구를 필요로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