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최신제품이 한국에서 가장 먼저 검증되면서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반도체 최고의 하이엔드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한국은 새로운 서비스 도입이 빠르다는 점 때문에 그동안 글로벌 기업들에 테스트베드로서 매력적인 시장으로 평가받았다. 한국은 IT 시장 규모가 14조원가량으로 일본의 6분의 1, 중국의 2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최근 국내 소비자들이 하이엔드 제품에 대해 왕성한 구매력을 자랑하면서 최신 제품의 경우 일본 판매량을 웃돌고 있다.
이처럼 한국이 하이엔드 제품 최대 시장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 데 따라 한국 시장에 대한 글로벌 기업들의 전략도 크게 바뀌고 있다.
◇하이엔드 제품 가장 먼저 확산=인텔은 지난 7월 말 펜티엄을 대체하는 새로운 CPU로 ‘코어 2 듀오’를 전 세계 동시 출시했으며, 이 제품은 일반 CPU 가격의 두 배가 넘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출시 두 달 만에 최대 판매 제품으로 등극한 것은 물론이고 전체 판매량 또한 일본을 앞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CPU가 가격과 시장 검증 등의 이유로 출시 이후 최대 판매 제품이 되기까지 1년 가까이 걸리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성장이다.
AMD도 가장 최고 사양 듀얼코어 CPU가 국내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제품으로 꼽히고 있다. 이 제품의 경우 일본과 비슷한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일본 PC 시장이 물량 면에서 한국의 3배 정도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에서의 비중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지쯔와 AMD의 합작회사인 스팬션은 일본이 제2의 본사라고 할 만큼 큰 시장 규모를 차지하고 있지만, 휴대폰용 노어플래시와 같은 무선 솔루션 부문(WSD) 제품의 판매량은 한국이 일본을 뛰어넘었다. 특히 대용량 플래시일수록 한국 시장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 한국이 스팬션의 최대 전략시장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전략 재편=그동안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일본을 별도의 시장으로 분류하고 중국과 한국은 아시아 지역으로 묶어 전략을 펼쳐왔으나, 한국이 하이엔드 시장으로 자리매김함에 따라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게 됐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은 급성장하는 시장 △일본은 전체 규모가 가장 큰 시장 △한국은 하이엔드 시장이라는 세 가지 구도로 나눠서 전략을 짜고 있다.
이에 따라 신제품을 출시할 때에도 주요 인사가 가장 먼저 한국을 찾는 사례가 다반사가 되고 있다. 스팬션의 경우 세계 최초로 쿼드비트 메모리를 전 세계 동시에 발표하는 날, 본사 CEO인 버트란캠보가 한국을 찾기도 했다. 리니어테크놀로지는 하이엔드 제품이 한국에서 가장 많은 물량이 팔린다는 점을 감안해 한국 시장에서만 가격 할인 정책까지 적용했다.
홍사곽 리니어테크놀로지코리아 사장은 “한국은 일반적으로 글로벌 기업들에 5%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시장이었다”면서 “그러나 하이엔드 제품이 가장 빨리 적용되고 시장도 커지고 있어 한국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거나 별도의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문보경기자@전자신문, okm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