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창업열풍 긴급진단

한동안 잠잠했던 개발자들의 창업열풍이 또다시 게임계를 강타하고 있다. 최근 몇달 사이에 5명의 유명 개발자들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회사를 창업했다. 올 들어서만 10여명 이상이 창업대열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따라 업체들이 우수인력 유출을 막기 위한 대책마련에 나서는 등 비상이 걸렸다. 이같은 현상은 최근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자자들이 성공 가능성이 높은 ‘유명’ 개발자에 관심을 돌리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시 활발해지고 있는 개발자들의 창업 배경과 전망을 긴급진단해 본다.

최근 개발자들 사이에서 창업 바람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유명 개발자는 물론 조금이라도 이름이 알려진 개발자라면 어렵지 않게 거금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개발자들의 창업을 단순히 보아 넘겨선 안된다”며 “업계 전체의 발전을 위해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창업 열풍을 타고 핵심 개발자가 중도이탈할 경우 업체의 입장에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뿐 아니라 많은 개발자들이 대박을 노리고 창업하지만 준비부족으로 쪽박을 차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독립을 강행하는 개발자가 증가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번째가 인생을 한번에 역전시킬 수 있는 ‘대박’이 가능하기 때문이며, 다음이 자신이 만들고 싶은 작품을 개발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마지막 원인은 처우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게 잠재돼 있기 때문이다.

개발자들이 창업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대박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개발자들은 ‘누가누가 ○○으로 대박을 터뜨렸다’는 말을 들을 때 마다 ‘나도 한번 대박을 쳐야지’하며 꿈을 키운다. 그러다가 자금을 대주겠다는 투자자가 나타나면 미련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에 나서는 것이다.

 

이같은 창업을 통해 성공한 사람이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이렇게 성공할 가능성이 로또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 훨씬 높다는게 이들의 생각이다. 게임이 성공하면 많은 돈을 단기간에 벌 수 있는데, 회사 자체를 매각하면 수 억원에서 수백 억원까지 거머쥘 수 있는게 현실이다.

 

최근 ‘귀혼’ 개발사 앤앤지는 제일엔테크에 약 107억원에 인수되면서 다시한번 대박을 증명했으며 지난 4월에는 ‘던전앤파이터’ 개발사 네오플이 약 240억원에 NHN에 팔렸다. 또 7월에는 ‘마구마구’의 애니파크도 CJ인터넷의 품으로 들어갔다.

한 개발사 임원은 “자본금 5000만원으로 시작해 투자자를 모아 5억원만 마련하면 프로토 타입까지 완성할 수 있다”며 “게임만 좋으면 퍼블리셔에게 비싼 가격으로 넘길 수 있어 실력있는 개발자라면 누구나 창업을 꿈꾸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또 “게임이 성공하면 엄청난 금액이 매달 안정적으로 지급되는데 개발력만 인정받으면 회사 자체를 매각하기도 어렵지 않아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한편 만들고 싶은 게임을 위해 창업하는 순수파도 적지 않다. 최근 FPS를 개발하고 있는 한 중소업체의 사장이 대표적인 케이스.

그는 자신이 개발하던 게임이 회사 대표의 욕심에 의해 망가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더이상 참지 못하게 되자 ‘내 손으로 제대로 된 게임을 개발해서 유저들에게 서비스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창업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평소 만들고 싶었던 게임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몰두하는 것은 어떠한 일과도 비교하기 어렵다”며 “사장의 자리에 올라 순수하게 개발에 몰두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불만”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개발자들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도 독립에 적지 않는 영향을 준다. 특히 이러한 경우는 성공한 개발자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처우에 대한 불만이다. 갖은 고생 끝에 게임을 개발해 크게 성공했으나 막상 막대한 열매는 일부 임원들에게 집중되고 처우가 개선되지 않거나 당초 약속했던 인센티브 등 보상이 전혀 없는 케이스다.

다시말해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엉뚱한 사람이 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에 N사의 개발자들이 이직을 하거나 독립을 많이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현재 이 회사는 개발자에 대한 대우를 크게 개선했다고 하지만 당시에는 박봉에 인센티브 불이행 등으로 개발자들의 불만이 컸다고 한다.

한 업체 개발자는 “어려운 시절 라면만 먹으며 힘겹게 성공의 꿈을 키워 마침내 게임을 론칭해도 대우에 별다른 차이가 없으면 당연히 반발이 일어난다”며 “누가 봐도 회사가 안정이 됐는데도 대주주만 독식하는 모습에 신뢰에 금이 갔고 그것이 퇴사의 이유가 됐다”고 말했다.개발자의 창업 열풍은 쉽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게임회사의 재산은 바로 인력이며 가장 중요한 핵심이기 때문이다.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업체일수록 그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그렇다고 개발자의 독립을 막을 마땅한 대책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또 외부의 원인보다 심리적인 요인이 강해 본인의 의지를 막을 수도 없다.

예를 들어 안정된 업체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일하는 개발자라도 자신의 신세가 월급쟁에 불과하다며 뛰쳐나가겠다면 이를 막을 명분이 없는 것이다. 또 핵심 개발자의 연봉이 아무리 높아도 ‘대박’과의 격차는 너무 크다. 게다가 자신이 만들고 싶은 작품을 위해 나가는 경우는 사실상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다.

한 업체 대표는 “이직과 독립이 잦은 분위기로 인해 항상 불안감을 안고 산다”며 “이익에 대해 공정한 분배를 약속해도 어떤 위기 상황이 올지 몰라 언제라도 대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 놔야 하는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개발자들에게 지분을 나눠주는 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불만 요소는 항상 잠재돼 있으며 외부의 유혹도 적지 않아 정답을 찾기란 사실 불가능하다”며 “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강력한 리더십, 그리고 신뢰를 통해 믿고 따르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성진기자 har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