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체결을 위한 두 나라 논의가 어느덧 4차 협상까지 이르렀다. 17개 분야에 걸친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내부적으로는 아직도 FTA 자체에 대한 찬반 논란이 해결되지 않고 있어 이래저래 힘든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지식재산권 분야도 예외는 아니며 특히 저작권은 한미 간 견해뿐만 아니라 국내 이해관계인의 시각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미 FTA에서 저작권은 다른 분야와 다소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FTA의 기본 방향은 상품시장 자유화나 서비스 시장 자유화 등 시장개방과 규제완화다. 그러나 저작권 분야의 쟁점은 이것이 아니라 두 나라의 관련법을 일치시키는,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내법의 권리자 보호 정도를 미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규제강화의 성격을 띤다.
물론 저작물에서 얻는 경제적 이익의 관점에서 보면 저작권 강화는 실질적인 통상문제 성격을 띠게 된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설립협정에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협정(TRIPs)이 포함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지만 저작권과 관련해 FTA가 가지는 근본적인 의미는 단순한 두 나라의 통상문제가 아닌 저작권법 체계 변화에 두어야 한다.
우리의 저작권법은 구 일본저작권법을 원용해 1957년 1월 28일에 제정됐다가 30년이 지난 1986년 12월 31일 비로소 전문이 개정된 이래 몇 차례의 부분 개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개정과정을 살펴보면 대부분 저작권에 관한 국제조약에 편입되면서 이에 상응한 법·제도가 마련됐음을 알 수 있다. 저작권이라는 개념 자체를 서구에서 받아들여 마련한 것이 저작권법이었고 미디어·교통의 발달은 국제적 차원에서의 저작권 보호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각국의 법령에서 저작권 관련법이 제일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바로 그러한 점에 기인한다.
따라서 저작권 분야에 관한 한 FTA는 저작권법 체계의 일련의 변화 과정 중 한 단계며 우리 사회의 정책적 결정과 연결된다. 단지 미키마우스에게 얼마를 더 지급해야 되고 한류 수출로 우리가 얼마를 벌 수 있는가 하는 산업적 측면에서만 FTA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문제는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이 현재의 국제적 표준보다 더 높다는 것이고 이에 대한 우리의 문화 정책적인 고려와 사회적인 합의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결국 내부적으로 저작권 정책방향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겠으나 저작권법 개정안 논란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과정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번 FTA에서는 일단 국제적 기준에 충족하는 국내법의 규정은 최소한의 변동에 그치도록 방어하고 국제기준에 미달하는 미국법은 그 변경을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또 우리의 법률적·문화적 환경에 맞춰 도입할 필요성이 있는 부분을 진지하게 고려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만약 한미 FTA가 타결된다면 이러한 희망사항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저작권 협상과정에서 드러난 미국의 의사나 이미 체결한 다른 FTA의 결과를 고려할 때 어떻게든 권리자·저작권산업의 보호가 강화되는 쪽으로 합의될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그 결과를 우리의 저작권 정책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미리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법의 기본적인 정책방향은 저작권법 제1조에 이미 나타나 있는 것처럼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기회에 저작권의 제한과 한계에 관한 규정을 좀더 유연하고 현실적으로 확대하고, 법정허락 제도 추가 도입이나 자유 라이선스 제도를 지원해 집행 단계에서의 이용자 보호를 위한 보완 조치를 마련, 권리자와 이용자의 균형을 최대한 유지해야 한다. 이와 함께 대규모 저작권산업과 개인 저작자 사이에 자본과 경제력의 차이로 수익배분에 왜곡이 생기지 않도록 균형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도 수반돼야 할 것이다.
◇윤종수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 iwillbe@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