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공대에 있다보니 느끼는 것이지만, 요즘 학생들 수학실력이 갈수록 떨어집니다. 그래서, 한국말로 해도 이해시키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영어로 강의해서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뻔합니다. 아마 교수의 영어실력만 올라가고, 학생들의 전공 실력은 지금보다 더 떨어질 것입니다. 물론 소수 영어 잘하는 학생은 예외이겠지만....
국내 대표적인 과학기술 토론 사이트 ‘사이엔지’(http://www.scieng.net)에 올라온 모 대학 공대 조교수의 글이다.
최근 대학가에 부는 영어 강의 바람이 대학 간 경쟁으로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서울대 공대가 영어강의 확대 방침을 발표하자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 수도권 주요 대학의 공대들도 너도나도 내년 신학기부터 영어강의 과목을 늘릴 예정이다. 문제는 이런 영어강의 열풍이 자칫 강의의 내실을 떨어뜨리는 악영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제화 위해서는 영어강의가 필수(?)=KAIST는 내년부터 모든 신입생을 대상으로 영어수업을 진행하고 현재 석박사 50%, 학사30%인 영어강의를 해마다 10%씩 올려 2010년에는 석박사100%, 학사70%로 상향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서남표 총장의 취임 후 공개된 국제화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정보통신대학교(ICU)는 모든 전공과정을 영어로 강의한다. 김도연 서울대 공대학장도 최근 “내년부터 외국인 학생이 한 사람이라도 수강하는 과목은 영어강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대는 현재 대학원의 경우 영어강의 비중이 전체 강의의 30%, 학부는 10% 미만이다.
연세대는 신임 교수가 오면 2년내 의무적으로 영어 강의를 하게 돼 있다. 공대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며 내년에는 전공과목의 영어 강의 비중을 더 높이기로 했다. 고려대는 2003년 1학기에 전체 10%에 해당하던 영어강의 비율이 2006년 2학기 현재 32%에 달한다. 특히 공대와 경영대 비중이 가장 높다. 이화여대는 상대적으로 영어강의 비율이 낮은 편. 공대 5개 학부 중 환경학과에만 영어과목이 2과목 개설돼 있다. 반면 대학원에는 총5개 전공 39개 과목 중 12개 과목이 영어 전공이다. 이 대학 관계자는 “학부에도 내년부터는 영어 강의를 증설해 의무수강토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허울좋은 국제화보다는 전공심화 능력을 키워야=수도권 A대학 공대의 B교수는 “영어 원서 위주의 어려운 전공 교재를 우리말로 풀어주지 않고 영어로 가르친다면 과연 학생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C대학 공대의 D교수도 “영어로 강의한다고 국제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공학교육인증(ABEEK)을 도입해 커리큘럼을 개선하는 것이 진정한 국제화에 부합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사이엔지에도 획일적으로 영어 강의를 도입하는 것이 고등학교까지 모국어로 교육을 받아 영어 이해능력이 떨어지는 대다수 학생이나 교수의 학문 연구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의견들이 압도적이다.
‘Juniorf’라는 ID의 네티즌은 “대학들이 영어강의를 통한 국제화라는 허울좋은 명분만 내세우지말고, 교수 연구 역량의 국제화, 학생 교육의 내실화라는 정말 중요한 의제를 가지라”고 충고했다.
학부와 대학원을 구분해서 접근하는 대안도 제시됐다.
ID ‘Cruznet’이라는 네티즌은 “적어도 학부 3학년까지는 모국어로 전공 과목을 뼈속까지 깊이 이해해서 영어가 모자라더라도 기본 실력 자체가 탄탄한 사람을 길러 내고 심화과정에 들어가는 4학년때 1∼2과목 정도 매우 강도높은 코스로 진행한 후 대학원에서 영어 강의를 더 활성화하자”고 제안했다.
조윤아기자@전자신문, fora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