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채연석 前 항공우주연구원장(2)

[결단의 순간들]채연석 前 항공우주연구원장(2)

②세계최초 우리의 로켓 ‘주화(走火)’

 1972년 봄 정릉의 언덕 위에 있는 국민대에서 국내 고화기 자료 연구의 대가인 허선도 교수님을 만나 뵙고 우리 옛 로켓의 연구에 대해 말씀드렸다. 허 교수님은 타 대학 학생인 필자에게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선뜻 빌려주시면서 학자의 태도와 학문하는 태도 등에 대해 두 시간이 넘게 여러 말씀을 해 주셨다. 사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러한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신 분은 허 교수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시작은 하였지만 연구라는 것이 그렇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대학생이 처음 해 보는 연구인데다 별도로 연구비가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가정교사로 일하며 마련한 돈으로 자료를 모으며 진행했다. 국내에서는 처음 하는 연구 분야라 제대로 도움을 받을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 뿐이었다. 늘 머릿속에는 이 생각뿐 이었고 연구도 계속하니 가속도가 붙어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이 해결되곤 했다. 하나씩 의문이 풀리고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질 때마다 미지의 세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희열을 조금씩 맛 볼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아무도 모르는 것을 연구해 혼자만 알게 되었을 때의 짜릿한 희열은 이 세상의 다른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과학자나 학자들이 평생을 연구실에서 보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에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과학 잡지 ‘학생과학’에 1년 반 동안 연재했던 ‘로케트 이야기’를 모아 ‘로케트와 우주여행’이라는 제목의 책을 범서출판사에서 출판했는데 이 책은 ‘72년 문화공보부 우량도서’로 선정됐다. 필자는 우량도서를 저술해 학교의 명예를 높인 공로로 졸업할 때까지 전액 장학금을 받아 어려웠던 대학생활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우리 로켓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대학 4학년 여름쯤 마무리됐는데 연구하는데 가장 중요했던 자료는 세종과 문종 때 개발한 우리의 독창적인 화약무기들의 설계도를 모아놓은 국조오례서례의 ‘병기도설’이었다. 이 책에는 척(尺), 촌(寸), 분(分), 리(釐)의 단위를 이용해 각종 화기의 크기와 구조를 설명하였는데 ‘1리(釐)’는 0.3㎜에 해당하는 아주 짧은 길이로 당시 우리의 정밀과학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연구결과 우리나라 최초의 로켓은 고려의 화전이 아니고 달리는 불이라는 뜻의 ‘주화(走火)’였는데 세종 때에 ‘신기전(神機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신기전 중 가장 큰 ‘대신기전’은 서양보다 450년이나 앞서 세계 최초로 개발된 초대형 로켓이었다. 뿐만 아니라 문종은 이동식 다량 로켓 발사대인 ‘화차(火車)’를 직접 개발해 신기전을 100발씩 장전해 발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연구는 1975년 11월 국내의 역사학회에서 처음 발표됐고, 1985년에는 IAF(국제항공우주협회)에서 발표돼 국제적인 공인을 받았다. 그리고 1993년 대전 엑스포 때는 이를 복원해 발사시험 함으로써 국내·외에 우리 조상의 뛰어난 과학기술능력을 자랑할 수 있었다.

yschae@ka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