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방송·통신융합 논의는 특정 업체의 IPTV 도입에 온갖 정성을 쏟아온 것처럼 느껴진다. 300여회에 이르는 세미나, 공청회도 모자라 IPTV 시범서비스 사업자가 선정된 후에도 세미나는 지속되고 있다. 사실상 디지털케이블TV와 전혀 다를 것 없는 IPTV가 이토록 오랫동안 신규 서비스로 포장돼 방송과 통신업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통신사업자의 방송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해 주기 위한 작업 이외의 명분을 찾기 어렵다. 또 1995년부터 가입자 영업을 통해 일궈온 케이블TV의 성장과 만만치 않은 기업가치 상승 그리고 지역 사업권에 따른 영향력 확대 등은 오히려 경쟁체제 도입을 위한 대안으로 IPTV 등장을 수 년간 예고하고 홍보하는 자료로 이용돼 왔다.
아쉬운 것은 사실상 이 시점에서는 IPTV보다 디지털케이블TV의 도입을 이슈화하고 시청자 복지와 다양한 방송 및 통신서비스의 융합에 대한 논의도 비중있게 다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디지털케이블TV가 막 개화하기 시작한 이 시점에 다채널·고선명뿐만 아니라 양방향 서비스와 초고속인터넷·IP전화 그리고 특화채널 제공을 통한 콘텐츠 개발에 대한 논의가 좀더 본격화돼야 한다.
디지털케이블TV는 현재 그 어떤 플랫폼보다 소비자 복지 측면에서 많은 장점이 있다. 첫째, 디지털케이블TV는 그 어떤 매체보다 월등히 많은 수의 채널을 제공해 고객의 세분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매체다. 미국의 최대 MSO인 컴캐스트가 280여개 채널, 영국의 NTL이 200여개, 캐나다의 로저스는 260여개 채널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 세계적인 케이블TV는 많은 수의 채널을 바탕으로 신규 콘텐츠를 소화하고 고객의 세분화된 시청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현재 원활한 프로그램 공급을 원하는 국내 PP사들의 염원을 풀어줄 수 있는 완벽한 대안이 1400만 유료가구를 확보한 케이블TV인 것이다.
둘째, 양방향 채널 이용의 대표적 서비스인 RVOD·SVOD 및 FOD의 구현을 위한 최적의 매체가 디지털케이블TV다. 이미 상용화 서비스에서 증명했듯이 위성방송보다 서비스의 내용 및 기술적 우월성을 보인 디지털케이블TV는 양방향을 강점으로 독립형과 연동형 서비스, 정보형 상거래 참여형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매체다.
셋째, 디지털케이블TV는 자체 채널 개발, PP에 대한 지분투자 또는 조인트 벤처 설립 및 콘텐츠의 판권 확보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해나갈 계획이다. 그로 인한 산업유발 효과가 IPTV의 하드웨어 투자유발 효과보다 큰 규모로 나타날 것이다. 이제 플랫폼 사업자의 성패는 콘텐츠에 달려 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의 경쟁을 하고 있다. 케이블TV는 그동안 10년 넘게 콘텐츠 사업자와 동고동락해 왔으며 채널 마케팅의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은 우리나라 유료미디어 시장에서 매우 값진 것이다. 또 디지털케이블TV는 HD채널의 중요도나 시장 성숙도 및 투자 요건을 고려해 신중하게 서비스의 차별화를 이루어 나갈 최적의 매체다.
이 밖에도 향후 디지털케이블TV는 네트워크 특성의 우수성을 바탕으로 무선과의 기술적 제휴로 추진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서비스를 제공해 나갈 계획이다. 기존 매체의 성장력을 더욱 활성화하는 것이야말로 정책적으로 가장 효율적이고 현명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IPTV의 도입 못지않게 디지털케이블TV의 활성화가 더 중요한 사안이다.
◆유재홍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장 jhlew@klab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