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원부가 지난 2002년에 시작한 ‘일렉트로0580’ 사업이 5년간의 장정을 마치고 조만간 끝이 난다. 사업 종료를 앞두고 전문조사기관에 성과분석을 의뢰한 결과,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다. 이번 평가는 사업 주무부처가 의뢰해 이루어진만큼 후한 점수가 주어지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제기될 만도 하지만 충분히 납득이 간다.
이번 성과분석 결과 국산화율은 이에 크게 못미치는 60% 선에 그친 것으로 나왔다. 반면에 직간접적인 정량적·정성적 효과 면에서는 탁월한 성적을 거둔 것으로 평가됐다. 정량적으로는 투입대비 13.6배의 산출을 얻어 경제적이다. 지금까지 총 764억원이 기술개발에 투입돼 이미 실현된 매출액만 143억원이고 2010년까지 기대되는 매출액은 총 1조416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정량적 분석에는 변수가 많고 측정 오차도 있을 수 있으며 예측치가 포함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13.6이라는 투입대비 산출 비율(ROI)은 결코 낮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일렉트로0580 사업의 진정한 효과는 정성적인 측면에서 나타난다. 정성적 효과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정부부처가 목표달성이 사실상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과감히 도전했다는 점이고 둘째, 부처 간 헤게모니싸움이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와중에서도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 두 부처가 끝까지 공조 체제를 유지했다는 점이다.
엄밀히 말해 일렉트로0580은 실패한 사업이다. 목표 대비 국산화 달성률만 놓고 보면 무려 20% 포인트에 이를만큼 큰 차이가 난다. 정부 사업 중에 이처럼 목표와 결과가 차이를 보인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절반의 성공이라는 후한 평가에 공감하는 것은 사업 목표 자체가 달성하기 어려울 만큼 높았다는 점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통상 정부 부처는 사업 평가가 좋지 않을 경우 차기의 다른 사업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달성이 어려운 과제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면에서 일렉트로0580은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부품 국산화율 제고라는 당면 과제를 과감하게 시도한 도전정신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1년 부품소재 수입액(592억달러)은 수출액(620억달러)에 맞먹을 정도로 국산화율이 열악했다. 당시 50%에도 미치지 못하던 전자부품 국산화율을 5년이라는 단기간에 8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는 애초부터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산자부는 이 사업에서 세계 최초·세계 최소의 핵심부품을 다수 배출하고 광범위한 특허기반을 확보하면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고 이 덕분에 부품소재 국산화라는 대형 국가 프로젝트를 출범시킬 수 있었다.
일렉트로0580이 무엇보다 의미있는 것은 디지털 컨버전스가 가속화되면서 부처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알력이 심화되던 와중에 산자부와 정통부 두 부처가 협력해 윈윈 모델을 안착시켰다는 점이다. 지난 5년간은 산자부와 정통부가 디지털전자 분야를 놓고 치열하게 주도권 싸움을 펼쳐온 시기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 와중에서도 일렉트로0580은 양 부처의 협력 아래 부품국산화율 제고라는 의미있는 성과를 올렸다. 이 사업은 중간에 두 부처의 갈등으로 예산이 실종될 위기를 맞기까지 했다. 아쉬운 것은 두 부처가 큰 갈등 없이 좀더 협력했더라면 더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정부의 사업이란 궁극적으로 부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일렉트로0580은 지금도 여기저기서 밥그릇 싸움으로 인해 정책을 아예 실종시키거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부처들이 본받아야 할 정책 윈윈의 전범이다. 각 부처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모습이 아니라 기술과 산업, 기업과 국민을 위해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