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게임물등급위원회가 마침내 지난 30일 오전 서울 충정로빌딩에서 현판식을 갖고 공식 출범했으나 업계의 반응은 썰렁하기만 하다.
반기는 분위기는 커녕 오히려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게임등위가)첫 단추부터 뭔가 잘못 꿴 것 같다”며 앞날을 몹시 걱정하는 분위기이다. 각종 영상물을 두루 관장하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비해 게임만을 전문으로 하는 새로운 기구로서, 여러모로 산업 발전에도 도움이 클 것이란 당초의 기대마저 실종된 상태다. 오히려 영등위 시절보다 더 나을게 없다며 이런식으로 가다간 업계의 발목을 더욱 붙잡을 것이란 볼멘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게임등위 출범에 맞춰 업계가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위원 등 조직 구성이 늦어지면서 심사 적체 현상이 워낙 심각해 당장에 게임 개발사들이 겨울시장에 맞춰 서비스를 추진하는데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이같은 현상은 이미 예견된 것이란 점에서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를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사실상 심의가 전면 중단된 상태에서 적어도 한달 전에 모든 조직을 갖추고 준비해야 했는데 출범을 코앞에 두고서야 위원을 선임하는 등 업계 현안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캐주얼게임을 개발, 2차 클로즈베타 테스트를 앞두고 영등위에 심의를 신청했던 A사 사장은 캐주얼게임인데 영등위가 말도안되는 이유로 15세판정을 내려 재심의를 신청했는데 게임등위로 업무가 이관돼 서비스 일정을 맞추는 것은 사실상 포기했다”면서 기업의 생사가 달려있는 데도 관련 조직이 바뀐다는 이유로 나몰라라하는 것은 해도 너무하는 무책임한 처사”라고 흥분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영등위에 심의가 계류 중인 것과 게임등위 출범 이후로 신청을 미룬 작품 등이 한꺼번에 몰려들 경우 게임등위 출범 초기부터 적체현상이 더욱 심화돼 올 겨울농사를 포기하는 게임이 속출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신생 온라인게임 개발사인 B사의 한 관계자는 게임등위 출범으로 인한 행정상의 문제로 간주하기엔 중소 개발사에 미치는 업무상 손실이 너무 크다”며 정부가 행정공백을 최소화하고, 일정 기간 내에 신청한 게임은 심의 유예를 주는 등 특단의 지원책을 마련해주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게임등위의 전문성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업계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앞으로 3년간 게임등위號를 이끌어갈 1기 위원 선임에서부터 기대치를 크게 벗어났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화부가 지나켬 시민단체를 의식, 산업·기술 등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산업계 출신 인사들을 철저히 배제시킨 탓이다.
전 영등위 소위원회 위원은 여러 정황을 종합할때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긴 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을 몰랐다”면서 1기 위원들이 산업적 이해도가 낮아 자칫 일방통행식의 심의가 이뤄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게임업계 대표 단체인 한국게임산업협회도 이와관련, 최근 이사회를 열고 대응 마련에 착수했지만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협회 회원사의 한 관계자는 게임산업진흥법 제정 이후 가장 기대했던 것이 다름아닌 게임등위였는데, 이번 1기 위원 인선 내용을 보니 실망스럽다 못해 참담함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모바일게임 개발사의 한 관계자도 이번 조직구성에서 나타났듯 게임등위는 게임산업진흥법에 따라 출범했지만, 진흥과는 무관한 규제기구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면서 이러고도 2010년에 세계 3대 게임강국에 올라서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라고 꼬집었다.
업계 전문가들은 국회 계류중인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이 처리돼 게임등위 위원수가 15명으로 늘어나고 산업계를 대변할만한 위원이 참여할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다”고 전제하며 그러나 이번 조직 구성 과정에서 봤듯이 문화부가 과연 이같은 의지가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업계와 불신의 골이 깊다”고 지적했다.
문화부입장
보완장치 잘 마련…업계 우려 기우일 뿐”
새로 출범한 게임등위에 대한 업계의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는 기우라고 강조한다. 업계가 지적하는 위원들의 전문성 결여와 이에따른 게임산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대해서도 견해가 다르다.
문화부측은 게임등위는 등급분류와 사행성 게임물 결정 등을 하는 기구이며, 위원들은 건전한 상식을 갖고 게임물을 이해하면서 등급분류를 하는 것이 게임물의 사회적 통용성을 위해서 바람직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문성 부분에 대해서도 보다 전문적인 분석을 위해 상근직으로서의 전문위원제도를 도입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전문위원들이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게임등위 전체회의에서 등급 분류를 결정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특히 19명의 전문위원들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교육 등을 철저히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필요하다면 프로그램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외부 전문가 인력풀을 활용한 기술 심의 소위원회를 운영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게임등위 위원은 영등위원에 비해 등급분류 과정에서의 책임과 권한이 막강한데다 문화부가 강조한 전문위원 시스템 역시 이번 채용 과정에서 인력풀의 부재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에서 이같은 주장이 설득력이 약하다는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번 전문위원 공채에 참여했던 A씨는 전문위원 후보풀이 넉넉지않아 막판까지 채용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안다”면서 전문위원이 업무에 비해 대우가 그리 좋은편이 아니라 문화부의 눈높이에 맞춰 채용이 이루어졌을 것이라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문화부가 주장처럼 게임등위 1기에 대한 게임업체들의 우려가 기우로 끝나길 진정으로 바란다”면서 게임등위의 존재 이유가 기본적으로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에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업계에 불이익을 줌으로써 산업을 위축시켜선 곤란할 정도로 게임산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게임등위와 문화부가 뼛속깊이 숙지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중배기자
이중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