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채연석 前 항공우주연구원 원장(6)

액체 로켓을 국가의 정식 연구개발 프로젝트로 개발하려면 어떻게든지 액체 로켓의 핵심인 액체 엔진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줘야 했다. 추력 2.2㎏급 위성자세 조종용 추력기보다 훨씬 크고, 연료와 산화제 모두를 액체로 사용하는 추력 180㎏급 액체 엔진 개발을 시작했다.

 산화제는 질산이고 연료는 아민인데 두 추진제는 접촉을 하면 즉시 불이 붙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인공위성의 궤도 변경용 엔진에 많이 사용됐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액체 추진제 로켓 엔진을 시험할 시설과 장소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김동진 현대기술개발 사장(현 현대자동차 부회장)께 부탁해 컨테이너를 하나 얻고 그 속에 시험시설을 설치한 후 공터로 운반해서 시험하는 계획을 세웠다. 왜냐하면 로켓 엔진의 성능 시험 중 폭발할 수도 있기 때문에 외진 곳에 가서 시험을 하기 위해서였다.

 시험할 장소도 구하지 못해 고생하다가 당시 홍성완 한화 대전공장장의 도움으로 겨우 공장외각 빈터에서 시험을 할 수 있었다. 1995년 9월 6일 국내 최초의 소형 액체추진제 로켓 엔진을 지상시험하는 데 성공했다.

 과학기술부의 전의진 기계조종관과 홍재학 연구소장, 김 유 충남대 교수, 김동진 사장 등이 참석해 축하해 줬다.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액체 로켓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1996년 장근호 박사가 항공우주연구소장으로 취임하면서 도전적인 액체 로켓엔진 개발을 적극적으로 뒷받침 해줘 두 번째 엔진의 연소시험은 연구소 내에서 실시할 수 있었다. 시험은 성공적으로 잘 되었는데 시험이 끝난 후에 추진제 밸브가 잘 닫히지 않았다. 당시 시험을 준비하던 한 연구원이 목숨을 걸고 컨테이너 속으로 뛰어 들어가 밸브를 닫고 뛰어 나왔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연구원들은 한 가지 일에 집념을 갖고 몰두하다 보면 물불을 못 가린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위험 속으로 뛰어 들어갔던 것이다. 물론 옆에서 시험광경을 촬영하던 다른 연구원도 큰 폭음 소리에 놀라 뒤로 나자빠지는 웃지 못할 광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외국에서도 액체로켓을 개발하면서 초기에는 인명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한편 당시 연구소의 로켓팀은 2단형 고체 과학로켓(KSR-II)의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고, 그 다음 계획으로는 3단형 고체 과학로켓 ‘KSR-III’를 준비하고 있었다. ‘KSR-III’에서 액체 로켓 개발경험을 쌓지 못한다면 그 다음의 위성발사용 우주로켓 개발에서 액체로켓을 개발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KSR-III’의 시스템을 액체 추진제 로켓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연구소 로켓개발사업단을 이해시키고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정부 부처의 관련자도 만나 액체 로켓 개발의 필요성을 이해시켜야 했다. 액체엔진을 만들어 시험에 성공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조금씩 액체 로켓 개발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후 ‘KSR-III’의 시스템이 1단은 고체 로켓으로, 그리고 2단은 액체 로켓으로 수정됐다.

 드디어 국가 프로젝트로 액체 로켓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yschae@ka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