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프린터 시장에 리필잉크와 관련한 ‘특허 경계령’이 떨어졌다. 리필잉크 기술을 둘러싼 브랜드와 리필업체의 공방이 날로 치열해지는 가운데 국경을 넘어선 지적재산권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전 세계 리필잉크 분야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가진 국내업체를 겨냥한 공세가 한층 거세지면서 수출은 물론이고 국내 시장에도 상당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HP, 국내 잉크테크 겨냥 특허 소송=8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은 세계 최대 프린터 업체인 HP가 독일에서 잉크테크 제품을 취급하는 판매 업체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HP에 따르면 잉크테크가 ‘잉크젯 프린터용 리필 키트’가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잉크테크는 국내 프린터 잉크 리필업체 가운데 매출과 회사 규모가 가장 커 사실상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HP가 간접적이지만 국내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잉크테크 측에 따르면 HP는 특허 침해에 따른 배상액으로 12억원 정도를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HP는 지난해 미국 리필잉크 업체 카트리지 월드, 올 6월에는 미국 사무용품 판매점 오피스맥스, 8월에는 중국 카트리지 업체 G&G 나인스타 이미지를 특허 침해 혐의로 고소하는 등 마크 허드 CEO 취임 이후 지식재산권을 기반으로 한 특허 공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발목 잡힌 국내 소모품 업체=HP와 국내업체 간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지난해부터 프린터 분야 주요 글로벌 업체들은 잇따라 국내업체를 상대로 지식재산권 공세에 나서고 있다. 일본 캐논은 최근 삼성전기와 파캔OPC를 상대로 레이저 프린터 감광드럼 특허권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이 때문에 국내업체는 내수는 물론이고 수출에도 적잖은 타격을 받았으며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앞서 엡손도 국내 리필잉크 업체를 대상으로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법적 공방을 벌였다. 한마디로 국내업체가 ‘소모품 특허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는 모양새다.
이는 상대적으로 국내업체가 전 세계 리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중국 등은 단순 잉크 생산에 그치고 있지만 국내업체는 자체 기술력으로 브랜드 제품 못지않은 품질을 유지하면서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상당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프린터 비즈니스, 소모품이 알짜=잉크·토너·드럼과 같은 소모품을 겨냥한 프린터 업체의 공세는 지금보다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프린터 비즈니스가 이미 하드웨어에서 소모품으로 넘어가는 등 ‘애프터 마켓’ 중심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시장조사기관 스탠퍼드 C 번스타인에 따르면 HP는 지난해 영업이익 56억달러 중 80%를 잉크와 토너 부문에서 벌어들일 정도로 프린터 소모품이 핵심사업으로 부상했다.
문제는 국내 리필업체가 가장 큰 피해자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실제 국내 프린터 시장은 하드웨어 쪽은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글로벌 브랜드가 과점하고 있고 그나마 내수와 수출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쪽이 리필잉크 분야였다. 산업계에서는 “잉크 특허는 프린터 시장의 뇌관과 같다”며 “프린터 업체의 특허 공세는 이제가 시작이어서 국내업체도 무방비로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병준·윤건일기자 bjkang·benyun@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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