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반도체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삼성은 일본기업처럼 망할 각오로 투자할 만한 돈이 없습니다. 반도체는 생산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견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에는 반도체를 같이할 수 있는 멤버가 없습니다.”
소설가 김진명씨의 2002년 작 ‘바이코리아’에서 일본 경제의 리더 마쓰시타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이 반도체사업 진출을 고민하는 이병철 삼성 회장에게 전하는 충고의 말이다. 실제 배경을 바탕으로 한 허구지만 소설 속 마쓰시타 회장의 이야기는 당시 현실을 너무도 잘 분석해 놓고 있다.
2006년 11월 현재, 삼성전자는 반도체 분야에서 전 세계 경쟁업계의 추종을 불허하는 방대한 특허와 서로 제품(메모리)을 가져가겠다는 고객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반도체 시장 선두의 프리미엄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높은 이익을 실현하며 자본력을 바탕으로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그러니 두 가지는 갖춘 셈이다.
하지만 세 가지 중 마지막 하나, 반도체를 같이할 멤버, 즉 주변에서 도와줄 세계적인 장비·재료 협력업체만은 아직 갖지 못하고 있다.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한 기자간담회에서 ‘반도체 장비 산업에 진출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삼성전자는 소자에 전념하고 있으며 장비 분야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말했다. 즉, 지원은 하되 장비·재료 사업은 어디까지나 협력업체의 사업모델이라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결국 소설 속 마쓰시타 회장이 제시한 마지막 과제는 삼성의 독자적 힘보다는 ‘상생’을 바탕으로 한 ‘대승적 차원의 접근’으로만 해결 가능하다는 의미다.
특히 이 마지막 남은 하나의 숙제는 ‘핵심 원천기술이 되는 장비·재료를 무기화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선진업체들의 음모(?)’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져 독자적 기술 기반의 반도체강국 코리아를 구축할 수 있는 관문이다. 물론 대기업은 해외기술과 협상을 위한 중소기업 육성만으로도 충분히 현상을 지켜나갈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미래 경쟁력도 같이 생각할 저력을 갖춘 대한민국이다.
15일 반도체·디스플레이 대기업 사장단이 ‘상생’을 위해 머리를 맞댄다. 조력자로서의 정부 역할도 컸다. 하지만 대기업이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기대가 함께한다. 이 같은 느낌이 소자·패널에서 장비 재료를 포함하는 진정한 반도체산업 강국의 길을 여는 느낌으로 승화되기를 기대한다.
심규호기자·디지털산업팀@전자신문, khs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