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실종된 IT839

 최근 한나라당 국회의원 한 분을 만났다.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의 이 의원은 올해 국정감사를 앞두고 휴대폰을 하나 구입했다고 한다. 전화번호 끝자리는 8390.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온 IT839 정책이 ‘아무것도 없는 제로라는 의미’라는 부연설명도 잊지 않았다. 국감을 통해 정부의 IT839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의원의 이어진 설명이 더 충격적이다. 야당 의원으로 IT839 정책을 하나하나 진단해보려 했는데, 여당 의원들의 비난이 너무 신랄해 질문 자체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또 그동안 IT839를 마치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이 정책의 잘못을 질타하는 의원들에게 반박 한 번 제대로 못하는 데서는 참담함까지 느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최근 국감에서 여야 의원들은 IT839 정책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IT839 정책의 목표와 기대효과가 너무 부풀려졌고 정책을 추진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제대로 된 평가자료 하나 없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벌써 IT839를 대체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이 준비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IT839 정책이 첫선을 보인 지 3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나타나고 있는 모습들이다.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처럼 여겨졌던 IT839 정책이다. 강력한 실천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주관 부처인 정보통신부 장관이 차량번호까지 8390으로 교체했으며, 디지털TV를 구입하면 정부가 구입대금을 빌려주는 이른바 839 적금까지 등장했다.

 2년 전 광풍처럼 휘몰아쳤던 이 정책이 올 국감에서 지적된 것처럼 실패한 정책이라면 우리의 미래 또한 절망적이다. IT839만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가능케 하고,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를 보장해줄 수 있을 거라고 국민 모두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일 게다. 그러기에 만일 의원들의 지적대로 실패한 정책이라면 정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시급히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 시행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정작 정책의 수혜자인 IT기업들의 IT839 정책에 대한 평가는 그리 부정적이지 않다. IT839로 인해 미래 첨단산업 연구와 투자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벤처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따라서 지금 IT839 정책의 오류에 대해 시비를 걸기보다는 평가가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거라는 의견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성급한 비난의 원인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한 IT기업들의 대답은 명쾌하다. 주관기관의 수장인 정통부 장관이 교체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미래 먹거리를 위해 마련된 정책이 장관이 바뀌면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면 문제다. 장관이 바뀌는 것만으로 정책의 뿌리가 흔들린다면 내년 대통령 선거 이후에는 또 얼마나 많은 정책이 비난의 도마에 오를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정책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잘못이 있다면 이를 인정하고 수정하면 된다. 사람에 따라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는 정책이라고 한다면 누가 정부를 믿고 사업을 벌이겠는가. 지금이라도 IT839 전략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검토해 보자. 그리고 정책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이를 수정보완해 성공한 정책으로 만드는 게 정부의 몫이다. IT839는 지금 어떻게 돼가고 있느냐고 많은 IT기업인이 묻는다. 정부의 정책을 믿지 못하는 이 같은 우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그런 정부의 모습이 보고 싶다.

 양승욱 논설위원@전자신문, sw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