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사랑 따윈 필요 없어

정말, 이런 영화 따윈 필요 없다. 일본에서 히트한 로맨스 TV 드라마를 리메이크 한 ‘사랑 따윈 필요 없어’는 국민여동생 문근영이 소녀에서 숙녀로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유일한 수확이다.  이야기는 겉멋이 잔뜩 들어 있고, 과장되어 있다. 현실적 리얼리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로맨스 소설이나 순정만화의 상투적 틀을 따라 식상한 내러티브로 전개된다. 사회의 밑바닥에서 비천한 일을 하는 잘 생긴 남자가 등장하고 비련의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신분의 차이 때문에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그들 사이의 사랑이 싹 트는 순간, 이야기는 비극적으로 끝이 난다. 백마 탄 왕자를 슬쩍 비틀어 백마 탄 공주가 등장하는 스토리 구조인 셈인데, 비련의 여주인공 혹은 신분상승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치는 밑바닥 출신의 남자 주인공을 통해 관객들의 동일시를 유도하고 허황된 팬터지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너무나 상투적 줄거리를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런 영화는, 관객들의 팬터지를 만족시켜 주려고 하지만 두껍게 분칠을 해서 자신의 추악함을 감추려는 늙은 창부의 얼굴처럼 속이 드러나 보이는 위장된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 최고로 잘 나가는 호스트 줄리앙(김주혁 분)은 어떤 이유로 악독한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 쓰게 된다. 28억원이 넘는 돈을 갚기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한달. 그때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은 시각장애인 소녀가 그 앞에 나타난다. 그는 돈을 위해 그녀에게 접근한다.  이런 이야기 구조는 벌써 끝이 보이지 않는가? 유산 상속자인 소녀에게는 어린시절 헤어진 오빠가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오빠는 죽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줄리앙은 자신을 그 오빠로 위장해서 그 집에 잠입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기초적 사실만 알고 있어도, DNA 검사나 다른 방법을 통해서 얼마든지 줄리앙이 진짜 오빠인지 사실 확인을 할 수 있는 데 사건 전개의 가장 중요한 그 사실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만화 같은 이야기 전개에 극중 인물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줄리앙이 오빠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를 거부하던 소녀도 결국 마지막에는 그를 사랑하게 되고 줄리앙은 목적했던 돈을 받아내지만 그 역시 순수한 사랑에 빠져든다는 이야기는 삼척동자라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려는 순간, 악덕 사채업자가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비극적 해결사로 등장한다. 뭐 이야기는 이럴게 뻔한 공식을 따라 전개된다. 강남의 잘 나가는 호스트를 하기에는 김주혁은 그렇게 잘 생기지도 않았고 나이도 너무 많다. 호스트들의 실제 나이는 20대 초반이다. 김주혁 정도면 퇴물 호스트가 아니라, 왕년의 잘 나가는 호스트였지만 지금은 업소 사장으로 있는 역할이 제격이다. 캐스팅 미스다. 더구나 사랑이 이루어지는 상대는 문근영이다. 두 사람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트나 촬영은 겉멋만 번지르르하게 든 이 영화의 속살을 보여주는 것 같다.현실적 고뇌나 리얼리티는 눈곱만큼도 없고 과장된 순정만화 속의 이야기를 억지로 화면에 구현해 보려는 안타까운 시도를 2시간이나 바라본다는 것은 고문이다. 신파도 이런 신파가 없다. 화면 속에서는 가슴 아픈 사랑에 헤어지고 다시 만나며 눈물 흘리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마음은 ‘이런 영화 따윈 필요 없어’ 라고 외치고 싶다.이 영화의 유일한 수확은 우리의 근영낭자를 보는 것이다. 국민여동생 문근영도 그러나 개인기를 벗어나서 시스템에 자신의 능력을 실어야 할 것이다. ‘어린 신부’, ‘댄서의 순정’ 모두 작품성으로는 별 하나짜리다. 그녀가 좋은 감독의 좋은 영화에 출연해서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줄 수 있기를 학수고대한다. ‘사랑 따윈 필요 없어’의 주인공들은 모두 같은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기자들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자신의 소속사 배우들만으로 상업 영화 하나 만들어보겠다는 과욕이 이런 참사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영화는 어느 한 사람의 힘이 뛰어나서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거대 매니지먼트의 힘에 지배되는 한국 영화산업의 추악한 이면을 엿보는 것 같아 불쾌한 감정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