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파워 ON](12)로봇 한국의 주역-연구소·대학 현장을 찾아서(5)

◆ADD 무인자율화 연구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국내 로봇연구기관의 서열로 따지면 가장 역사가 짧다. ADD가 무인로봇개발을 위한 연구팀을 정식으로 발족한 시기가 2004년 12월이니 설립한지 2년도 안된 셈이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에 ADD가 쏟아낸 굵직한 로봇 성과물을 보면 역시 민간연구소와 달리 ‘군기’가 바짝 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현재 ADD의 무인자율화 연구실에는 약 30명의 연구원들이 무인차량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국방로봇을 만들고 있다.

 사실 ADD는 별도의 로봇연구팀을 조직하기 전부터 무인화된 무기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연구, 개발해왔다. 이미 99년부터 실전에 배치된 정찰용 무인 항공기(UAV)도 군사용 로봇의 범주에 들어간다.

 ADD는 단기적으로 지상전투용 로봇개발에 주력할 방침이다. 적진을 누비는 ‘견마형(犬馬型) 로봇’은 현재 ADD가 가장 주력하는 프로젝트의 하나로 2011년까지 개발된다. 견마형 로봇은 바퀴나 6개의 다리로 각종 장애물을 넘나들며 들판이나 험한 지형에서 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감시 정찰, 위험물 탐지 등에 활용된다. 또한 장갑차 형태의 ‘다목적 감시 정찰 로봇’과 ‘근접 감시 정찰 로봇’도 개발돼 사상자가 발생하기 쉬운 시가전에 투입될 예정이다.

 정찰로봇이 등장한 이후에는 본격적인 전투로봇이 등장해서 전장의 주도권을 바꾸게 된다. ADD는 육상전투용 로봇체계가 완성되는 2020년 이후에는 무인전투기(UCAV)도 개발할 계획이다. 또 바닷 속에서 특수임무를 맡게될 무인 잠수정(UUV)도 만들어진다.

 현재 군사용 로봇 분야에서 가장 앞선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미 국방부는 지난 1983년부터 장갑차를 무인화하는 국방로봇실험을 시작했고 오는 2015년까지 군사용 차량의 30%를 무인화한다는 계획 아래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고 있다. 이에 비해 ADD의 로봇관련 예산규모는 비교할 수준이 못된다. 하지만 지상용 로봇분야에서 미국과의 기술격차는 크게 줄어들고 있다.

 박용운 팀장은 “한국은 군사용 무인차량 분야에서 미국의 2002년 수준까지는 왔다”면서 “국방로봇 전체로 보면 한국과 독일, 프랑스는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ADD는 또한 시내에서 무인주행이 가능한 차량을 개발하기 위해 UC버클리와 시드니대학과 공동연구도 추진 중이다.

 ADD가 위치한 대덕은 군사용 로봇 연구에 있어 이상적 환경을 갖고 있다. KAIST와 ETRI 등 국책 연구기관과 벤처기업 등이 밀집해 있어서 연구인력과 부품 조달에 여러가지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차세대 전차나 자주포와 같은 덩치 큰 방산무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경험은 ADD의 로봇사업에 귀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향후 우리나라의 국방력 강화와 로봇산업에서 ADD의 비중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인터뷰-박용운 팀장 

 “미래의 전쟁은 무인화된 로봇기술에 크게 의존할 겁니다. 자주국방을 위해서라도 군사용 로봇개발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대덕 국방과학연구소(ADD)의 박용운 무인자율화 연구실험실 팀장(48)은 인간 대신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군사용 로봇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ADD에서 본격적인 무인로봇연구에 착수한지 불과 2년 남짓. 그 짧은 기간에 박용운 팀장과 연구원들은 군사용 로봇분야에서 굵직한 성과를 쏟아냈다. 사람이 탑승하지 않아도 스스로 지형을 판단하고 움직이는 ‘무인전투차량’은 미국과 기술격차도 3∼4년 수준으로 근접했다는 평가다.

 박 팀장은 미국 유학시절부터 무인차량을 연구했기 때문에 군사용 로봇개발은 전혀 낯선 분야가 아니다. “사실 군사용 로봇이란 기존 전차, 장갑차량의 플랫폼을 무인화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민간용 로봇에 비해 오히려 실용화 속도가 빠른 편입니다. 오는 2015년이 되면 혼자서 시속 25km로 달리는 경전투로봇이 국내에서도 나올 겁니다.”

 그는 ADD의 로봇예산이 미국방부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인데도 이만한 성과를 거둔 것은 연구원들의 헌신적 노력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박 팀장은 요즘 매달리는 견마형 로봇의 기술적 파급효과를 설명하며 큰 자부심을 나타냈다.

 “본래 로봇기술의 발달은 군사용 로봇에서 파생된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 ADD에서 개발하는 군사용 로봇은 국방력 강화 외에도 우리나라가 세계 3대 로봇 강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자력로봇랩

 한국원자력소 원자력로봇랩에서는 원자력 발전소나 방사능 오염지역과 같이 사람이 작업하기 곤란한 극한지역에서 작업하는 로봇을 개발한다.

 지난 90년 설립된 원자력로봇랩은 국내 로봇연구소 중에서도 역사가 오래된 편에 속한다. 이곳에서 개발된 로봇제품들은 우리나라 극한로봇 기술개발의 산 역사나 다름없다. 좁은 급수배관과 원자로 등 도저히 사람을 투입할 수 없는 장소에서 정확한 작업을 수행하는 특수로봇을 자체 개발하는 국가는 많지 않다. 미국과 유럽·일본 등 내로라하는 원자력 강국을 제외하면 한국이 유일하다.

 원자력로봇랩에서 자체 개발한 발전소용 로봇은 가압중수로의 핵연료 교환 작업로봇, 중수로 급수배관 검사용 이동로봇, 원자로 검사용 수중 로봇, 배관내부 검사 및 청소로봇, 증기발생기 전열관 검사·보수 로봇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특수로봇은 국내 원전 환경에 최적화된 설계 덕택에 외산제품을 능가하는 성능과 저렴한 가격대로 원자력 업계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76년 고리 원전1호기가 생긴 이후 원자력 발전소의 유지보수를 위한 자동화 수요도 시작됐지만 상황은 열악했다. 외산 로봇장비의 가격은 부르는 것이 값이었고 제대로 운영하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사람이 차폐복을 입고 위험한 작업을 하는 상황을 줄이려면 독자적인 하이테크 로봇기술을 갖추는 수밖에 없었다.

 원자력로봇랩이 특수로봇의 국산화 과정에서 가장 큰 애로점은 원전의 극한 환경에 잘 견디는 로봇제품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로봇의 시각장치인 CCD센서나 각종 전자부품들은 강한 방사선을 쪼이면 종종 못쓰게 된다. 이러한 기계적 고장을 막기 위해서 방사선 차폐설계와 이중 안전장치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또 물속에서 작업을 하는 로봇도 원자력로봇랩이 국내 최초로 실용화했다.

 많은 시행착오와 노력 끝에 원자력로봇랩의 기술은 현재 영국·독일 등 유럽의 국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특수로봇을 하나하나 국산화하면서 쌓은 경험과 기술인력은 원자력로봇랩뿐만 아니라 국내 로봇산업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원자력로봇랩은 요즘 다양한 로봇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국방·우주 분야에서 원자력로봇랩이 실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방부가 추진하는 견마형 로봇에서 원자력로봇랩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주공간에서 작업하는 탐사로봇이나 방사능 오염지역에 투입되는 군사용 정찰로봇도 원자력로봇랩의 방사선 차폐기술이 응용된다.

 이 밖에도 원자력로봇랩은 충남대 의대 재활공학과와 함께 하반신이 불편한 환자의 재활을 돕는 의료용 로봇을 개발하기도 했다. 한편 원자력로봇랩 출신의 로봇 벤처사업가로는 한울로보틱스의 김병수 사장을 들 수 있다.

◇인터뷰-정승호 랩장 

 “원자력로봇랩은 90년대 초반부터 극한 작업로봇의 국산화를 선도한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없었다면 원자력은 물론이고 로봇분야서 한국의 위상은 지금만 못했을 겁니다.”

 정승호 원자력로봇랩장(48)은 원자력 발전소는 사람이 직접 들어갈 수 없는 위험구역이 많아 일찍부터 극한 로봇의 개발수요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핵연료를 교체하거나 원자로 속에 들어가 검사를 하는 등 복잡하고 위험한 업무를 완벽히 수행하는 로봇을 자체 개발하면서 터득한 노하우가 연구소의 가장 큰 자산이다. 그동안 원자력로봇랩이 개발한 로봇들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는 않지만 세계적인 기술수준을 인정받고 있다는 자랑이다.

 “국내 원자력 발전소는 아직도 외국산 로봇장비를 많이 사용하지만 도입과정에서 예전처럼 터무니 없는 가격을 지급하지는 않습니다. 원자력로봇랩의 존재 자체가 국익에 큰 도움이 되는 셈이죠.” 정 랩장은 사람이 작업하기 곤란한 극한지역에서 작업하는 원자력 로봇기술이 다른 분야로 활용되면서 시너지효과가 커지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국방로봇 개발계획에서 원자력랩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가 관심이 있는 로봇분야는 핵누출 사고발생시 현장을 수습하는 로봇장비다.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건이 터진 이후 미국·일본에서 막대한 자본을 들여 핵누출 사고현장에 투입하는 로봇을 개발했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비용 문제로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화려한 로봇은 아니지만 국내 전력생산과 국민의 안전에 원자력로봇랩이 중요한 역할을 해온 사실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