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위기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19세기가 자연과학 시대였다면 20세기는 전자공학 시대였다. 21세기는 나노와 바이오 시대다. 인문학의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20세기 중반 트랜지스터로 시작된 전자공학은 반 세기도 안 돼 거대한 정보혁명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한창 무르익고 있는 정보혁명의 앞날을 점치기란 쉽지 않다.
이 와중에 움트고 있는 나노와 바이오 혁명은 르네상스에서 정보혁명으로 이어져온 변화상과는 전혀 판이할 것이다. 정보혁명까지는 과학기술의 이용후생기라면 나노&바이오 혁명은 인류 본질의 탐색기가 될 것이다.
르네상스는 중세 신 중심주의에 반발한 인간 중심주의, 즉 인본주의에서 기인했지만 의도와 달리 자연과학주의의 극치로 이어졌다. 우주와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는 과학기술 발전과 자연의 섭리에 따라 모든 것이 발전하거나 퇴보한다는 진화론이 결정적 계기였다. 실제로 르네상스 이후 인류는 산업혁명과 정보혁명을 거치면서 진화를 거듭해왔다.
하지만 인본주의는 온데간데 없다. 중세의 신이 자연과학의 이치로 대체됐을 뿐이다. 인간은 거저 거대한 자연과 사회의 변화에 적응해야만 생존을 보장받는 운명일 뿐이다. 거대한 자연과 사회 속의 보잘것없는 한 개체일 뿐이다. 신의 계시를 전하는 예언자 역할을 미래학자가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신의 뜻 대신 위대한 정보화의 계시를 전파한다.
나노와 바이오는 기실 자연과학주의에 반기를 든다. 자연의 이치나 생명의 근원까지도 인간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나노를 이용하면 사물의 본성까지도 바꿀 수 있다. 바이오는 사람의 유전자까지도 조작할 수 있다.
나노&바이오주의가 르세상스 시대 사람들이 꿈꾸던 인간을,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세상을 창조할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자연의 법칙을 신으로 여기는 자연과학주의가 오히려 자연과 환경을 파괴했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창조주로 여기는 나노&바이오주의는 인류를 파괴할 가능성이 높다.
나노&바이오주의가 르네상스 본연의 인본주의로 회귀할지, 신의 자리를 차지할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자연과학이 멀리했던, 그래서 위기를 맞고 있는 인문학과의 동거가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