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리스트]국내 유일의 FPS 심판 황규찬

“스타크래프트를 하다가 너무 같은 게임만 하고 있는 것이 싫어 FPS 게임을 시작했습니다.”한국 e스포츠 협회에서 FPS 공인 심판으로 근무하고 있는 황규찬 심판이 처음 접한 게임은 놀랍게도 FPS가 아니었다. 그 또한 당시 대세로 자리잡고 있었던 ‘스타크래프트’를 접하며 게임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평범함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에 당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던 ‘레인보우 식스’를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FPS와의 질긴(?) 인연이 시작됐다고 한다.그는 전공도 특이하다. 디자인이라는 전혀 의외의 분야를 전공한 미술학도다. 현재 협회에서 제작 중에 있는 ID카드도 모두 그의 솜씨라 한다. 또 대학에서 그레이라는 록밴드 동아리 활동을 하며 드럼을 쳤던 경험을 가지고 있고 현재도 교회에서 악기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단군 클랜으로 유명세황 심판이 본격적으로 FPS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클랜을 만들면서 부터였다. “조금 유치하지만 당시에만 해도 강렬한 이미지의 ‘짱’이라는 이름의 클랜을 결성했어요. 그런데 클랜 활동에 문제가 생겼죠. 같은 이름의 클랜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때문에 황심판은 다른 ‘짱’ 클랜과 간판내리기(클랜 이름 바꾸기) 경기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클랜을 결성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황심판의 ‘짱’ 클랜은 경기에서 패하고 간판을 내려야 했다.황심판의 FPS에 대한 열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 때 마니아들 사이에선 굉장한 유명세를 탔던 ‘DaNKuN(단군)’이라는 클랜을 만들고 활동을 재개했다. 황심판의 진가는 여기서 부터 발휘되기 시작한다. 단군 클랜은 당시 국내 리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레더활동의 붐이 되었던 사이트 중 가장 유명한 K레더에서 5위를 차지하며 명성을 높여 갔다.이러한 명성을 통해 2001년 모 잡지와 인터뷰를 하게 됐고 그 당시 접했던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인터뷰 며칠 후 군에 입대해야 했다. 군에서도 FPS와의 인연은 계속됐다. 그가 근무하던 곳의 왕고참도 그와 같은 FPS마니아였기 때문이다. “풀렸다고 하죠. 그 선임병에게 제 아이디를 말했더니 무지 반가워하더라구요.”#KeSPA컵서 전격 발탁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 한 황심판은 일단 학업을 마치기 위해 복학을 하고 열심히 디자인 공부를 했다. 하지만 게임을 완전히 접을 수는 없었다. 이 때부터 그가 현재 가장 자신있어 하고 주종목으로 내세우는 ‘스페셜포스’에 심취했다. 황심판은 이후 강동원을 닮은 것으로 유명세를 탄 김솔 선수의 소개로 유명 클랜인 ‘E1 패밀리’에 입단했다. 김솔, 민경수와 함께 ‘3SP with E1 패밀리’로 활동하게된 것도 이 때문이다.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주전으로 뛰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다. 학업과 병행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 같은 클랜의 민경수에게서 ‘스페셜 포스 리그’ 예선의 심판 제의를 받게 된다. 이후 여러대회에 심판과 심판장을 거듭하며 경력을 쌓아나갔다. “당시에는 학생 신분이라서 아르바이트로 활동했어요. 그러던 도중 제 인생의 전환점이 KeSPA컵 심판장  일을 하게됐어요” 그는 이 대회에서 심판장을 보며 협회 관계자의 눈에 들었고 작년 12월 21일 최초의 FPS 공인심판으로 선발되는 영광을 안았다.#“경험은 곧 나의 힘”황 심판은 이제 꿈은 하나다. 심판으로서 오래도록 협회에서 일하고 싶은 것이다. “e스포츠 협회에서 일하다 보면 업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해요. 하지만 어떤 부문에서 일하는 것보다 다양한 e스포츠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아요.” 그는 협회에서 업무를 하다 보면 선수단은 물론 여러 지자체 관계자, 매체 관계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시야를 넓힐 수 있다고 했다.황심판이 이렇듯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는 것은 그가 꿈꾸고 있는 미래에 자신을 위해서란다. 그는 e스포츠가 더욱 발전되면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일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e스포츠가 발전하면 언젠가는 국제 기구가 생길것 아닙니까. 저는 그 곳에서 국제 심판을 하고 싶습니다.”

김명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