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힘이다. 777만㎢의 대제국을 건설한 칭기스칸은 정복지에서 반항하는 적군을 무참히 살해했지만 기술자는 고스란히 살려서 포로로 잡아갔다. 그 기술자들이 원의 통치에 필요한 신무기와 신제품을 만들었다. 명은 도자기를 서구에 팔아 번 돈으로 만리장성을 쌓고 보수해서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구조물로 탄생시켰다. 산업혁명은 영국을 거의 2세기에 걸친 세계 패권국가로 변모시켰다. 예나 지금이나 기술은 경제와 국력의 중심에 있다.
이와 같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고려해 참여정부는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을 국정목표로 삼았다. 연간 일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의 원동력을 과학기술에서 찾고자 한 것이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과학기술 예산을 연평균 9.9% 늘리고 과학기술부총리를 신설해 국가 전체의 과학기술정책을 아우르도록 한 것도 과학기술에 대한 참여정부의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과학기술은 경제 성장에 대한 기여를 넘어서는 또 다른 중요한 사명을 갖고 있다. 그것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삶의 질에서 행복이 나오며 국민이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다. 그 어떤 명제도 삶의 질보다 우선시될 수 없으며 과학기술도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그 근본 목적을 둬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12위의 경제력을 갖고 있지만 국민의 삶의 질은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세계경영개발원(IMD)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삶의 질은 조사대상 60개국 중 41위로 나타났다.
국민 소득과 교육수준이 높아질수록 건강하고 안락한 삶에 대한 수요는 증가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에서는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한 삶의 질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한다. 정부는 이와 같이 급증하는 삶의 질에 대한 수요에 대처하고자 2030년 세계 60개국 중 10위의 삶의 질 확보를 목표로 하는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이러한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국민의 삶을 위해 과학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지난 11월 1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는 ‘비전 2030 실현을 위한 기술기반 삶의 질 제고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 보고는 깨끗한 환경, 안전·안락한 삶, 건강한 신체와 자유의 증진,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루기 위한 과학기술의 역할을 모색한 것이었다. 안전·건강·교육·주거 등 공공성이 강한 분야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적 수요를 보장할 책임이 있고 시장경제만으로는 수요 충족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국가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분야에서는 국민 수요에 대응해 국가가 용역을 제공하기 위해 기술을 과감하게 개발하고 국가는 이를 채택해야 한다.
한편 과학기술의 발전은 사회를 풍요롭게 하지만 그와 비례해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기도 한다. 과학기술계의 또 다른 사명 중의 하나는 과학기술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면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즉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폐해와 개인의 사회 부적응을 방지하고 모든 국민이 과학기술 발전의 과실을 골고루 누릴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기술 발전으로 고기능·고가의 제품과 서비스가 속속 출현하고 있으나 저소득계층·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이들은 이솝우화에서 여우가 바라보는 포도에 다름이 아니다. 과학기술의 생산과 소비에서도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진보하는 과학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에서 낙오되게 마련이다. 과학기술에 기초한 삶을 통해 사회적 약자는 물론이고 모든 국민이 자연스럽게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창조적 복지’가 이루어져야 한다.
앞으로 따뜻한 과학기술, 국민과 함께 하는 과학기술이 되기 위해 과학기술은 실험실뿐만 아니라 국민의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과학기술은 소유의 패러다임에서 존재의 패러다임으로 틀과 시각을 확장해야 한다. 국민의 눈물을 훔치고 웃음을 안겨주는 일에 과학기술이 뒤처질 수는 없다. 지금은 국민을 위해 과학기술계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이다.
◆대통령 정보과학기술보좌관 김선화 seonhwa@presiden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