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불러 본 당신 이름! 메아리되어 돌아올 줄 알았는데 그것마저 사라져버렸습니다…’
디스플레이 장비업계 사장들이 최근 잇따라 열린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LPL)의 내년도 경영설명회에 참여한 뒤 하나같이 느낀 소감이다. 양대 패널업체가 내년 설비투자 일정에 대한 질문에 “확정된 것이 없다. 시장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아리송한 답변만 되풀이 했기 때문이다.
LPL과 삼성전자는 지난 2000년 이후 장비·재료 등 협력업체 사장단이 참여하는 ‘프렌즈클럽’과 ‘협성회’를 운영중이다. 신속한 설비투자가 생명인 장치산업의 특성상 사업계획을 미리 공유하고, 긴밀한 협조체제를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매년 봄, 가을에 열리는 정기총회에서는 향후 패널업체의 경영계획이 공개되고 이에 맞춰 장비·재료업체들이 일사 분란하게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곤 했다.
하지만 지난 24일과 28일 열린 ‘프렌즈클럽’과 ‘협성회’의 정기 총회는 ‘답답함’ 그 자체였다. LPL의 5.5세대, 삼성전자의 8세대 2라인 투자 시기에 목을 매는 장비·재료업체의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돌아온 것은 “빨라질 수도, 늦어질 수도 있다”는 애매한 대답뿐이었다. 50인치 LCD TV 전망이나 와이드 모니터 시장 상황과 같은 핵심을 비켜간 ‘동문서답’도 이어졌다.
패널업체들의 아리송 답변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최근 들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정보 유출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다. 공시 위반에 대한 제재가 강화된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속사정은 패널업체들도 내년 시장상황을 쉽게 예측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LPL 관계자들은 “사실 우리도 답답하다. 내부 계획은 있지만 상황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쉽게 속내를 털어놓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최근의 경영설명회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어진 디스플레이 시장 상황을 다시한번 느끼게해준다. 그러나 협력사들은 딱히 이야기해줄 것도, 들을 것도 없는 알맹이 빠진 ‘경영설명회’에 웬지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고 한마디씩 한다.
장지영기자@전자신문, jya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