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IT 강국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IT산업이 국제사회에 미친 영향이나 비중을 생각해보면 당연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IT 강국은 단기간이 아닌 수많은 시간과 자본의 투자로 나타난 성과다. 60년대에 과학기술 발전의 터전이 마련되고 자동차·선박·철강 등 중화학 공업의 기반이 다져졌다. 또 80년대에는 PC 개발 등으로 컴퓨터 붐이 조성됐고, DRAM 개발은 세계 반도체산업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는 계기가 됐다. 뿐만 아니라 IT 강국의 초석이 된 전전자교환기도 이 당시 개발됐다. 이 덕분에 우리나라는 메모리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폰·디지털TV 등에서 세계 1등 국가로 올라설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 제품보다 세계적으로 시장 규모가 훨씬 큰 소프트웨어(SW)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은 초라하기만 하다. 실제로 메모리반도체 분야는 세계 시장의 40% 정도를 우리가 차지하고 있으나 SW 분야는 2%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SW 시장은 DRAM·디스플레이·TV·휴대폰 전체를 합친 것보다도 규모가 훨씬 더 크다. 메모리반도체만 비교한다면 무려 24배에 이른다. 그래서 SW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조금만 높여도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막대해질 것이다.
SW산업은 모든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면에서도 국가적으로 육성할 가치가 크다. 만약 SW산업이 획기적으로 발전해 반도체와 같은 수출 주도산업으로 육성됐다면 그 자체로도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겠지만 정밀기계는 물론이고 콘텐츠나 문화산업 발전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지금 SW산업을 일으킬 만한 좋은 환경을 갖고 있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초고속인터넷이 구축됐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가 구현됐다. 그리고 대학교에서는 SW 관련 우수 인력을 무수히 배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W산업이 발전하지 못해 이들이 마땅한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요즘은 SW학과 입학 지망생이 줄어들었고 대학원 과정에서는 박사 과정 학생을 구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물론 정부도 SW산업을 육성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SW에 관련된 기업체도 많아서 소프트웨어산업협회 등 관련 협회, 소프트웨어진흥원과 같은 학회도 많이 있다. 또 그동안의 업적도 적지 않다. 80년도에 시작된 국가기간전산망 중에서 금융전산망과 행정전산망 사업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직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초고속인터넷으로 발전해 국가 사회의 변화를 주도했다.
참여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따라서 이제 와서 참여정부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을 잘 마무리하는 게 우선이다. 그 첫 번째 산업이 바로 SW가 돼야 한다. 지금도 공공정보화 사업에 많은 예산이 집행되고 있다. 이를 연구개발과 연계시켜 기술개발을 유도하고, 우수 기술자들이 배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국산제품 구매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정부 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최근 교육정보화 사업이나 콘텐츠 게임 그리고 영상처리 산업 등이 뜨고 있다. 이런 때에 국가가 대규모 사업을 시작함으로써 기업들에 고급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면 많은 우수 인력이 이 분야로 몰릴 것은 분명하다.
과거 정부는 대형 국가 주도 연구사업을 집중적으로 펼치면서 기술을 개발하고 인력을 양성했으며, 기업들에 추구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면서 IT 강국의 초석을 다졌다.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이 나눠먹기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당연히 큰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SW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 산업의 비중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다행히 서비스 산업 발전을 뒷받침할 기본 인프라가 잘 갖춰진만큼 이를 어떻게 활용해 SW 강국으로 거듭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현 참여정부뿐 아니라 차기 정권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오길록 숭실대학교 겸임교수 gilrokoh@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