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이기태 사장과 패튼 장군

지난 11월 29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IEEE 글로브컴 2006’ 기조연설자로 등단한 이기태 삼성전자 사장은 “지금 정보기술은 온오프라인, 유무선, 통신·방송 등의 서비스 결합은 물론이고 다양한 통신·IT 기기를 하나로 묶는 디지털 컨버전스가 가속화되고 그 중심에 와이브로가 있다”고 했다. 기존 홈네트워크 기술에 와이브로를 접목하면 명실상부한 유비쿼터스 홈 라이프가 실현될 수 있다. 삼성전자가 준비 중인 와이브로 홈서비스인 ‘유즈(Uz)’가 대표적이다. 와이브로가 지원하는 단말기도 노트북PC·PDA·PMP·MP3 플레이어·디지털카메라 등 무궁무진할 것이다. 와이맥스 가입자는 2011년 2770만명으로 올해 350만명보다 8배가량 급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침 8시에 시작된 그의 스피치는 어눌한 영어에도 불구하고 전 관객을 사로잡았다. 농담을 할 때마다 1000여명의 이동통신 관련 미국인 교수와 외국 연구원의 웃음을 자아냈고 ‘5인치 모바일 터미널’을 선보일 때는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기태 사장. 72년 인하대를 졸업한 후 삼성전자에 입사, 통신 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야전군 사령관이다. 또 삼성을 세계 정상의 통신업체로 우뚝 세운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가 만약 그 흔한 외국 유학파였다면 평범한 샐러리맨이 됐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일에 대한 정열과 IT세상을 꿰뚫는 혜안으로 마침내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섰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언급한 ‘미꾸라지를 죽이지 않고 장거리 운송할 때 메기를 같이 집어넣으면 미꾸라지는 정신없이 도망다니느라 죽을 새가 없이 무사히 운송된다’는 ‘메기경영론’이 있지만, 이기태 사장의 그룹 장악력은 잘은 모르되 그의 이런 캐릭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이날 저녁 내가 묶었던 호텔에서는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굴하지 않고 2차대전 시 미국 연합군 전차부대를 이끌었던 ‘패튼 3성 장군’ 영화가 방영됐다. 그는 과감히 밀어붙이는 뚝심과 지휘 통솔력을 바탕으로 후퇴 없는 공격작전을 펼쳐 마침내 독일을 점령했다. 참모들에게 고별스피치를 마치고 강아지를 데리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기태 사장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2006년 이기태 사장이 ‘세계를 내 손안에’를 목표로 세계 시장공간을 점유했다면 1943년 조지 패튼 장군은 전쟁승리를 위해 전차와 야전차포로 피를 흘리며 독일 땅을 점령했다. 이 사장은 평범한 체격을, 패튼은 우람한 체격에 부리부리한 눈을 가졌다는 차이가 있지만, 뚝심과 강한 그룹 장악력은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라인홀트 메스너의 ‘내 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를 읽었다. 저자 라인홀트 메스너는 행동하는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등반가이자 모험가다. 그는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8000미터급 14봉을 모두 완등했으며 그린란드·티베트·남극·서고비사막 등을 횡단했다. 그는 극단적인 생존 속에서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과정을 책과 글로 전해왔으며,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유럽의회 의원 생활 후 예순 나이에 꿈을 좇아 고비 사막을 횡단하는 데 성공한다. 언제부턴가 사막은 그에게 이상적인 경험의 공간이었고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미래를 들여다보는 창문이었다. 그는 사막을 건너면서 자신 안에 있는 마음의 사막을 들여다보고 무의 세계에서 참된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리고 사막의 비어 있음이 주는 평안함에 감탄하고 무한한 정적 속에서 참된 평안을 얻는다. 고비사막의 ‘무의 공간’을 걸어가면서 철저하게 자신을 비워가는 모습을 한달여의 느린 걸음으로 세상 이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게, 우리 인생의 양면이 아닌가.

◆이문호 전북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 moonho@chonb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