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변하고 있다. 레드오션이 돼 버린 대출시장을 건너 블루오션을 찾아야 한다는 과제가 뜨거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교차판매를 위한 금융상품 개발력 강화와 수수료 등 비이자 수익 확대가 이슈다. 이에 따라 IT시스템의 중요성도 한층 높아졌다. ‘IT장치산업’이라는 업의 개념까지 등장했다.
IT전략을 통해 블루오션 찾기에 앞장서고 있는 신한은행 김은식 IT그룹 부행장(54)은 그 중요한 출발점 중 하나를 ‘루비콘 강을 건너는 것’으로 표현했다. 지난 추석연휴 4일 동안을 이용해 은행의 전체 시스템을 새 시스템으로 전면 개편한 순간을 그는 그렇게 말했다.
신한, 조흥 두 은행의 대형 시스템의 통합과 함께 고객업무와 내부 정보처리에 각각 쓰이는 계정계와 정보계 등 전체 시스템을 단 한 번에 새로이 구축해 교체하는 큰 공사였다. 대형 은행시스템에서 빅뱅 방식의 오픈 플랫폼 도입은 유래가 없었다.
“구 시스템 가동을 종료시키는 컷 오버를 결정하는 순간의 심정이 바로 루비콘 강을 건너는 심정이었습니다. 2년이 넘는 기간동안 1300명의 인력과 3000억원을 투입한 일이었죠. 2002년 일본 미즈호 은행의 출범일에 발생한 ‘미즈호 대재앙’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시스템 전환을 한 뒤 다시 되돌릴 수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걸고 준비했습니다.”
김 부행장은 “차세대 시스템 도입 성공으로 은행 경쟁력이 다른 은행에 비해 3년 앞서게 됐다”며 “빅뱅방식으로 단축한 구축기간까지 포함하면 타 은행에 비해 5∼6년 앞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수 서버를 병렬로 가동한 멀티호스팅 시스템으로 일부 장비에 장애가 생겨도 계속 서비스가 되는 무정지 시스템이고 오픈 시스템 구조를 채택해 범용성을 확장했습니다. 관계형 데이터 베이스를 도입했기 때문에 기존의 내용으로 조합하는 경우 금융상품 개발에 걸리는 기간이 일주일에서 하루로 줄어듭니다. 아예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데도 2달씩 걸리던 데서 1∼2주 정도로 크게 시간을 줄일 수 있죠.”
이같은 변화는 단순히 IT가 시스템으로서 현업을 지원하는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창출자’로서 비즈니스의 리더가 되는 새로운 비전을 가능케 했다. “‘월드 클래스 아이(i) 비즈니스 리더’라는 비전을 세웠습니다. IT가 가치창출자와 시장 개발자의 역할을 하며 지능, 통합, 혁신을 달성하는 촉진제가 된다는 의미죠. 1등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역할입니다.”
김 부행장은 IT주도의 신규 비즈니스 모델 창출, 현 비즈니스 모델 최적화, 스마트한 IT투자, 창조적 혁신을 지원하는 IT문화를 IT전략의 핵심으로 설정했다. 내년 IT투자도 4000억원 규모를 투입키로 했다. 올해 4700억원에서 줄어들긴 했지만 차세대 프로젝트 종료를 감안하면 큰 규모다. “코어 시스템은 은행을 선두주자로 포지셔닝하도록 하면서 단위 시스템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경영정보화시스템 측면의 고도화를 추진한다는 것이 새로운 방향입니다. 상품개발에 IT의 지원기능 강화를 위해 개발총괄부를 신설하고 현업과 밀접하게 움직이도록 했습니다. 상시 PMO조직 형태로 운영될 것입니다.”
김 부행장은 82년 신한은행에 입행한 이후 초년병 시절 잠깐 전산부서에서 근무한 경험을 빼놓고는 IT와 거리가 멀었다. 비전문가로서 차세대 프로젝트를 이끄는데 한계가 있지는 않았을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IT시스템 구축은 은행 전체가 주도해야 할 최대 과제로 올라섰다는 것이 이유다. “은행업은 이미 IT장치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업무처리부터 상품개발, 인사에 이르기 까지 IT를 배제하고는 얘기가 안되죠. 따라서 차세대 시스템 도입은 IT그룹만의 이슈가 아니라 전행의 과제였습니다. 전행적 관심과 추진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죠.”
신한은행은 지난 8개월간 항상 차세대 시스템 구축을 경영전략회의 첫 주제로 올렸다고 한다. 최고정보책임자(CIO) 차원이 아닌 최고경영자(CEO)가 가장 먼저 챙기는 이슈가 된 것. “시스템 가동 초기 한 두 차례의 작은 오류가 있었지만 두 달을 거치며 성공적인 안착을 확인했습니다. 빅뱅 방식의 오픈 시스템 도입이면서 2000만 명 규모의 고객 데이터 베이스를 통합하는 작업임에도 조기 안정화를 실현한 것은 앞으로 다른 은행들의 시스템 도입에도 큰 영향을 줄 것입니다. 도전 의욕에 불을 지피게 되겠죠. LG CNS와 티맥스 등 함께 협력한 사업자들도 좋은 사례를 남기게 됐습니다. 1388명의 임직원과 500명의 협력업체 임직원이 힘을 합쳐준 덕입니다.”
◆신한은행의 차세대 프로젝트 구축 효과
신한은행의 차세대 프로젝트는 지금까지의 시도 가운데 가장 과감한 것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신한은행은 차세대 시스템 프로젝트를 종료한 이후 △고객 편의성 △상품개발 능력 △무정지시스템 △경영·신용관리 혁신 등의 큰 효과를 봤다고 자체 분석했다. 수치화해 비교평가할 수 있는 항목도 여럿이다. 먼저 24시간 365일 가동되는 무정지 시스템이 구현됐다. 휴일과 심야에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고 국외 점포와 연계한 글로벌 뱅킹 서비스 제공도 가능해졌다.
은행의 운영 효율성이 크게 좋아졌다. 지금까지 7일 이상 소요됐던 결산소요기간이 하루 반 이내로 단축됐다. 실시간 내부감사통제체제도 구축하는 등 경영관리에 대한 업무 전반이 대폭 개선됐다. 데이터베이스(DB)의 통합으로 상품 개발 기간도 짧아졌다. 보통 2∼3주 걸리던 상품개발 시간이 하루로 줄었다. 특이한 상품의 경우도 2달에서 1∼2주로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됐다. DB를 활용한 상품개발을 신속하게 함으로써 맞춤형 마케팅 지원을 강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구축으로 8000여종의 작업을 치밀하게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 이용환경의 개선으로 행원들의 입력오류율도 크게 줄었다. 과거 12.5%였던 오류율이 시스템 도입 초기엔 6.8%, 현재는 3% 밑으로 떨어졌다. 그만큼 서비스의 신속성이 높아진 것. 경진대회까지 개최하며 시스템 도입 환경을 적극 육성한 덕도 컸다. 외부적으로는 유닉스 방식의 오픈시스템 구조와 빅뱅방식의 방법론에 대한 대규모 레퍼런스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하나은행, 농협, 국민은행 등 뒤이은 프로젝트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며 금융IT시장의 트렌드를 이끌 전망이다. 프레임워크를 제공한 티맥스소프트와 구축 실무를 총괄한 주 사업자 LG CNS도 큰 장애없이 차세대시스템 도입을 완성함에 따라 향후 사업 확대에 청신호를 켤 수 있게 됐다. 김용석기자@전자신문, ys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