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요즘 LCD장비 업체 사장들을 만나면 열에 아홉은 한숨부터 내쉰다. 공급과잉 논란 속에 패널업체의 내년도 설비투자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고됐기 때문이다. 설비투자 규모가 바로 매출로 직결되는 장비 업체의 사장들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다.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고 싶다.” “막노동판에라도 가야겠다.” 농담 아닌 농담도 쏟아진다.
불황이 예고되면서 LCD장비 업계의 최대 이슈는 사업다각화다. 설비투자에 연연하지 않는 부품이나 소재로 눈을 돌리는가 하면 경기가 좋은 반도체 장비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는 업체도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다. 불과 3년 전 6세대 대형 설비투자가 잇따르자 너도나도 LCD장비 개발에 뛰어들던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사업다각화는 장비업계의 영원한 숙제다. 설비투자 ‘단비’만 기다리는 ‘천수답식’ 비즈니스 모델은 늘 불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행처럼 번지는 사업다각화만이 능사일까.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업체 베인앤컴퍼니는 200개 기업의 실증적 사례를 분석해 실패한 기업의 최대 화근은 무리한 사업다각화였다는 보고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사업다각화에 따른 역량 분산이 핵심사업의 동반 부실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도쿄일렉트론·AKT 등 세계적인 LCD장비 업체를 살펴보자. LCD 경기의 부침 속에서도 이들이 트랙이나 증착장비 등에서 세계 넘버원을 고수하는 데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경기가 좋든 나쁘든 주력장비에 연구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며 독보적인 위상을 확보한 것이다.
올해 국내업체로는 유일하게 수출 1000억원 고지를 밟는 디엠에스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부단한 연구 끝에 개발한 고집적 세정장비로 세계 정상에 우뚝섰다.
LCD 경기는 항상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시장조사기관은 내년 불황터널을 통과하면 2008년 또 다른 설비투자 붐이 일 것으로 보고 있다. 8세대, 9세대, 10세대로 이어지는 메가톤급 특수도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장비업체는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당장 먹고 살길을 찾을 것인가, 힘들지만 더욱 큰 시장을 예비할 것인가. 옥석은 가려질 것이다. 언제나 위기가 기회다.
장지영기자·디지털산업팀@전자신문, jya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