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증권업자 스트릭랜드는 돈을 잘 벌고 부부생활에도 문제가 없었다. 어언 중년에 들어선 그는 부인과의 관계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어느 날 그는 멀쩡하게 살던 부인과 이혼하고 남태평양의 섬 타히티로 떠난다. 거기서 그림을 그리며 살다 죽는다. 그가 문명으로 점철된 생활에서 벗어나 찾고자 한 것은 소박한 원시문명과 자연의 부름이었다. 영국의 작가 서머싯 몸이 ‘달과 6펜스’에 묘사한 고갱의 삶이 그것이다.
현대 지성으로 추앙받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앙드레 모루아가 쓴 소설 ‘왕도의 길’에서도 원시문명에 대한 진한 향수가 잘 묘사돼 있다. ‘왕도의 길’에서는 기다란 칼로 정글의 나무를 잘라가면서 고대 왕국 앙코르 와트를 찾아가는 과정과 땀을 흘리는 묘사는 생생하다. 캄보디아 고대신화의 벽은 이곳을 방문한 현대인을 잠시 도시적 일상의 윤회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이처럼 인류는 꽤 오랫동안 지리적 이동을 통해 또 다른 삶, 즉 세컨드 라이프를 경험하고자 여행을 꿈꾸면서 끊임없이 일상적 삶에서의 일탈을 꾀해 왔다. 하지만 최근 웹2.0으로 대표되는 디지털시대 트렌드의 등장은 인류의 모습은 사뭇 다르게 바꿔가고 있다.
최근 로이터통신은 자사의 홈페이지에 평소의 생활과 다름없는 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별도의 사이트를 만들었다. 델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세네갈 사이에서 둥지를 튼 가상의 델아일랜드 홈페이지를 마련했다. 시스코도 최근 ‘아일랜드2’라는 세컨드 라이프를 즐길 버추얼 사이트를 열었다. 미국의 유네버콜이라는 온라인 휴대폰 판매사도 고객이 자사의 가상세계에 기반을 둔 세컨드 라이프 사이트에서 생활하면서도 현실세계로 텍스트메시지를 보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현대의 인류는 현실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사이버 세계의 세컨드 라이프 사이트를 찾으면 된다. 온라인게임 사이트 리니지도 현실을 피하거나 현실과 다른 또 하나의 세계로 사람을 인도하는 탈출구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자신도 모르게 빠져든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통로인 옷장이다.
이 시대의 문화인류학자는 더는 쓰레기를 뒤지지 않아도 좋을지 모른다. 이들은 이제 인터넷 UCC 사이트나 세컨드 라이프 사이트를 연대기에 의거해 요약하거나 분석해 인류의 삶을 분석하면 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재구부장 콘텐츠팀 @전자신문,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