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수출액이 최근 3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처음으로 수출 통계를 작성한 1948년 수출액이 1900만달러였으니 57년 만에 무려 1만5000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이 가운데 전자산업 수출은 지난해 세계 열한 번째로 1000억달러 고지를 넘긴 데 이어 올해는 11월 말 현재 1052억달러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전자산업 역사는 TV산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년 일본에서 부품과 설계도면을 넘겨받고 기술을 지도받으며 흑백TV를 조립, 수출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부품이나 가진 기술이 전혀 없어 반제품을 설계도면과 함께 수입해 조립 가공하는 수준(SKD)에 불과했다.
사정이 이러니 부가가치가 있을 리 없고 ‘역 부가가치’를 감수하고서라도 기술을 습득해야 했던 게 당시 우리의 모습이었다. 조립기술을 확보하고 나서야 완전한 낱개의 부품상태로 수입해 조립하는 단계(CKD)로 발전할 수 있었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산업도 TV용 부품을 생산하는 데서 시작됐다. 세트산업의 경쟁력은 핵심부품에 달려 있어 국산화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같은 첨단 산업은 기술 이전은 물론이고 안정적인 조달조차 쉽지 않은데 이는 선진 경쟁사가 핵심부품 공급을 후발업체에 대한 견제수단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디지털전자 시장의 핵심이 되는 반도체 재료의 60% 이상, 디스플레이 소재의 70% 이상을 아직도 일본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삼성은 1972년 독자 개발한 흑백TV를 처음 수출한 이후 34년 만에 올해 3분기까지 TV 전체 수량과 매출 모두 1위에 올랐다. 삼성의 올해 TV 매출액만도 100억달러를 넘어설 전망이고 이 중 90%가 수출이다.
과거 우리에게 기술을 가르쳐 준 회사는 최근 구조조정에 들어가 공중분해될 모양이다. 금석지감을 금할 길 없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산업 구조와 수출입 통계를 잘못 이해해 전자산업이 일본에 대한 부품의존도가 높아 부가가치가 낮다는 폄하의 목소리도 있는 것 같다. 전자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으로 볼 때 서운하기 짝이 없다.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산업 위상에 대한 평가쯤은 한가하게 들렸을 수 있다. 그래서일까? 전자산업은 수출 3000억달러 시대 개막의 일등공신이자 국가 경제에 막대한 기여를 해온 중추 산업이지만 지난 10월 17일에서야 겨우 기념일(전자의 날)이 만들어졌다.
정부는 오는 2011년 무역 1조달러 시대, 2012년에는 수출 6000억달러 시대를 열어가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력품목인 전자산업의 경쟁력 제고가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완제품의 경쟁력 지속 확보가 중요하고 이는 제조기술 및 디자인과 공급망관리(SCM), 마케팅 능력, 브랜드 위상 등을 종합적으로 강화해야 가능하다.
또 현재 일본에 비해 열세인 핵심 소재, 부품 및 장비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여나가야 한다.
우리는 무에서 시작해 세계 초일류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산업을 일구어낸 경험이 있다. 기업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전자산업 종사자들이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도록 해 주면 시간 문제일 뿐 ‘디지털전자 왕국’이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다.
◆최지성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 gschoi@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