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박인숙 중기청 대전충남지방사무소장

[만나고 싶었습니다]박인숙 중기청 대전충남지방사무소장

 “지역 기업인들의 손과 발은 물론 머리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겠습니다.”

 중소기업청 개청 10년만에 첫 여성 지방 기관장으로 발탁된 박인숙 중소기업청 대전충남지방사무소장(51). 취임 후 4주째를 맞고 있는 그녀는 요즘 자투리 시간도 낼 수 없을 만큼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그만큼 지역에서 박 소장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반증이다.

 30여년간 중소기업 현장을 지켜온 그녀에게서 가식은 절대 찾아볼 수 없다.

 “누구나 최고가 되긴 어렵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다고 봅니다. 중소기업 정책을 전달하는 최일선 현장에서 기업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조직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 소장은 “꼭 뭘 이루겠다는 거창한 말보다는 기업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먼저 생각하고 움직이는 역할을 해 나가겠다”고 겸허한 자세를 잃지 않는다.

 박 소장의 어릴 적 별명은 ‘재벌’이었다. 어른이 되면 제조업체의 사장이 되겠다, 재벌이 되겠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해서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지금은 비록 재벌과 거리가 먼 공직에 몸 담고 있지만, 어릴 적 꿈의 절반은 일군 셈이다. 기업인들 옆에서 그들이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하는 일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0여년간 그녀는 늘 공부하는 자세로 살아왔다. “공부는 한 번 놓으면 하기 싫어집니다. 때문에 더 열심히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90년 남자들도 어렵다는 기술사 시험에 합격한데 이어 92년 여성 1호 공업 연구관으로 승진할 수 있었던 것도 늘 배우는 자세로 임했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92년에는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입문해 전문 지식을 넓히는데 힘썼고, 93년에는 ‘화학계측 이야기’라는 일본 번역서도 출간하는 등 한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박 소장 역시 30대 후반이었던 당시를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그래서 더욱 보람있었던 때라고 회상한다.

 당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의 편견이 심했던 시절이고 보면 박 소장의 늘 배우고 노력하는 자세가 이를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됐음은 물론이다.

 최근에는 우리 고유 악기인 가야금에도 관심을 돌려 실력이 수준급을 자랑할 정도다.

 “대덕연구개발특구는 기술력이 뛰어난 기업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충남 아산·서산 지역도 하루가 다르게 기업 여건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박 소장은 “대전·충남 지역은 장기적으로 국가 신성장 엔진의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지역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우리 조직이 가진 지원 정책과 정보 수집 능력 등을 총 동원해 지원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대전=신선미기자@전자신문, sm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