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막 소년티를 벗은 19살 청년이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 용산공고 산학우수 장학생으로 입사했다.
그 청년은 당시 기술력이 없어 모두가 기피하던 세탁기 설계실을 선뜻 자원했다.
그리고 정확히 30년이 흐른 지난 20일, 그는 ‘대한민국 세탁기 기술의 1인자’로 주목받으며 대한민국을 이끄는 10대 기술 대상을 수상한다.
최근 LG전자 최초로 고졸 출신 부사장으로 선임된 조성진 부사장(50)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조 부사장은 76년 한국 세탁기 보급률이 1%도 안되던 시절, 금성사 세탁기 설계실엔지니어로 출발해 올해로 31년째 세탁기와 함께 한 명실상부한 ‘세탁기 1인자’이다.
대한민국 10대 기술상에서 가전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스팀 트롬’으로 대상을 수상한 것이나 대기업 인사에서는 이례적으로 고졸 출신으로 부사장 자리에 오른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세탁기에 대한 그의 오랜 집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궁금했다.
“세탁기 개발 초창기 10여년간 일본의 기술을 들여다 제품을 출시하면서 일본에, 아니 세계에 없는 기술을 만들어보겠다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당시 세탁기의 기본 구조는 세탁통과 모터를 벨트로 연결해 클러치로 조정하는 방식. 제품 결함도 잦았고 소음이나 용량의 한계도 고민거리였다.
조 부사장과 개발팀은 공장 2층에 침대와 주방시설을 마련해놓고 밤샘작업에 돌입했다. 기술을 귀동냥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횟수만도 150여 차례나 된다.
조 부사장은 “전자업체가 모여있는 오사카를 주로 방문하다보니 오사카 사투리까지 배웠다”며 “일본인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 몰래 생산 라인을 구경하기도 했다”며 그 때를 회상했다.
그런 그의 고집은 5년 후 빛을 보게 됐다. 99년 세탁통에 직접 연결된 모터로 작동되는 ‘다이렉트 드라이브(DD) 시스템’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DD시스템은 부품 간소화는 물론 진동과 소음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원가를 60%나 절감해 미국·유럽 유명 업체의 기술 제휴 요청이 끊이지 않습니다. 스승 격이던 일본 기술자들이 DD모터를 납품해달라, LG전자 라인을 보여달라고 조를 때는 감회가 남다릅니다.”
DD시스템 개발 이후 LG전자 세탁기 판매는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지난 2000년 불과 2만대였던 LG전자 드럼세탁기 출하량은 올해 무려 200배가 넘는 400만대에 달한다.
드럼의 본고장인 유럽과 봉세탁기가 주류를 이루던 북미 시장에서의 성공은 더욱 갚지다.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 매장에서 LG 제품을 보면 촌스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는데 이제는 트롬 세탁기가 유럽 최고 명품 세탁기로 팔리고 있다”며 “지난 98년 드럼을 첫 판매한 이후 영국·네덜란드·벨기에 등에서 독일 밀레 제품과 함께 최고 성능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자랑했다.
북미 시장에서도 LG전자 드럼세탁기는 지난 3분기에 베스트바이·홈데포 등 주요 가전 매장에서 2위 업체를 1.5∼3배 이상 격차로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2002년 하반기 북미 시장 출시 때부터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시장의 가능성을 꼼꼼히 체크해온 조 부사장의 열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성과이다.
30년을 세탁기와 함께 한 인생이지만 그의 세탁기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그의 요즘 관심사는 ‘스팀’이다. ‘스팀 기능으로 세탁기 역사를 다시 쓴다’는 것이 그의 부사장 승진 이후 최대 목표이다.
“세탁의 완성은 다림질을 해서 보관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전자동으로 완벽히 소화해내는 것이 세탁기의 미래상이며 그 중심에 한국의 기술이 있습니다.”
<조성진 부사장은 누구>
△1956년 4월 충남 대천 생 △1975년 서울 용산공업고 졸 △1976년 LG전자 전기설계실 입사 △ 1985∼1991년 LG전자 전기회전기설계실 △1995년 LG전자 세탁기설계실(부장) △2001년 LG전자 세탁기연구실장(연구위원) △2005년 LG전자 세탁기사업부장(상무) △2007년 1월 LG전자 세탁기사업부장(부사장)
김유경기자@전자신문, yuk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