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상권마씸? 괜당이주마씸.”
제주도는 섬이라는 특성이 강해, 이른바 ‘괜당’판매가 실제 유통을 좌지우지한다. 괜당이란 ‘친척’을 일컫는 제주도 사투리다. 좁은 섬에서 ‘사돈에 팔촌’까지 따지면 결국 한다리 건너 모두 아는 사이가 되기 때문에 제주 도민은 모두 친척이라는 유대 의식을 나타낸다. 따라서 지인판매가 전자전문점의 성패를 좌우하는 주요 잣대로 작용한다. 실제로 하이마트는 3개 하이마트 지점의 지점장이 모두 제주 출신이다. 또 삼성전자나 LG전자 등도 직영점보다는 제주 출신이 직접 하는 대리점의 강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하이마트의 한 지점장은 “지점장이 제주 출신이냐 아니냐에 따라 월 매출만 5000만원이 줄었다 늘었다 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제주 도민에겐 ‘이왕이면 괜당네 집에 가서 팔아준다’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감귤 시즌과 신구간’이란 독특한 경제적·문화적 특성이다. 감귤 재배는 제주도 경제에서 강력한 산업군인만큼 감귤 출하 시기가 대형 가전 판매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또 제주도민은 이른바 ‘신구간’에만 이사하는 독특한 풍습이 있어, 대형 가전 판매도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신구간은 대한 후 5일부터 입춘 전 3일까지인데 제주에선 모든 이사를 이때에 맞춰서 일제히 한다.
LG전자의 대리점 관계자는 “혼수 시즌이라는 3월보다 신구간이 있는 2월에 대형 가전 판매가 더욱 활발하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2개 시와 2개 군으로 이뤄졌으며 전체 인구는 56만명, 20만5000가구에 불과한 작은 상권이다. 전통적으로 아파트보다는 단독주택이 주된 주거형태를 이뤘으며 2000년 이후 아파트 건설 붐이 일며 2005년 말엔 아파트(다세대·연립 포함) 보급률이 단독주택을 앞지르기도 했다. 제주도는 특히 한라산을 기점으로 북쪽에 위치한 제주시에 인구의 72%인 40만명이 거주,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상권이 제주시에 집중된 형국이다.
◇눈에 띄는 상권, 신제주=제주시를 둘로 나누면 본래 토박이 중심으로 일찍 도심을 이룬 곳을 구제주라고 한다. 반면에 구제주의 서쪽으로 새롭게 도심을 형성한 곳이 신제주인데 최근의 발전은 모두 신제주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2001년 이후 지어진 제주지역 모든 대단위아파트가 이 지역에 입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40대 연령층이 주소비층이며, 자영업자 및 사업체 대표가 많이 거주한다. 제주지역에선 고급가전 판매가 가장 활발한 지역이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인구유입이 예상되는데다, 2000년대 초 입주세대의 가전 대체 구매 수요가 2007∼2010년 사이에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돼 전망이 밝다.
◇정체된 구제주와 서귀포=구제주는 2000년 이후 상권 및 인구유입이 정체됐다. 젊은 세대의 신제주 지역 이동이 뚜렷한데다, 구시가지이기 때문에 도시개발이 쉽지 않다. 40∼50대 연령층이 주소비층이다. 가전 소비성향도 프리미엄 제품보다 실속형을 많이 찾는 경향이 있다. 향후 구제주의 주변 지역 개발을 통해 인구 유입이 일부 기대되기도 한다.
서귀포시는 제주에선 2대 도시지만 거주 인구가 8만∼9만명에 불과한 소도시다. 서귀포시의 특징은 감귤 재배 농가가 많기 때문에 그 영향이 강하다는 것. 감귤 재배는 최근 2∼3년간 호황을 이루며 서귀포시 지역의 가전 판매를 지지해왔다. 최근엔 한미 FTA가 진행되면서 감귤 재배 농가들이 장기적인 불황을 걱정하며 지출을 줄이면서 일정 정도 가전판매점이 타격을 입을 정도다. 전체적으로 고급 가전 제품 소비는 상당히 제한적인 편이다.
성호철기자@전자신문, hcsung@
◆LG전자대리점-새한공조
“감귤 농사 시세에 따라 소비가 이뤄지는데 감귤 가격이 좋을 경우는 준고급형 가전 판매가 많아 일반 농촌 지역보다는 고가 시장이다.”
LG전자의 전속대리점인 새한공조의 오정혜 지점장은 서귀포시 지역 상권 특색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다수 고객이 감귤을 재배하다보니 가전 판매점도 이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
“일년을 놓고 보면 8월 말부터 10월까지가 비수기고 12월 말부터 3월까지는 성수기”라고 덧붙였다.
설명해보자면 8월 말부터 10월까지는 감귤 수확을 준비하고 또 직접 수확에 나서는 시기인데 이때는 심리적으로 감귤 가격 추이를 지켜보면서 수확에 비용을 지출하는 때라고 했다. 감귤 농가에서 섣부르게 대형 가전을 구매하지 않는다. 제주 특유의 절약정신인 조냥정신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반면에 12월 감귤 수확이 있으면 현금이 농가로 흘러들기 시작하고 가전 판매도 살아난다. 또 감귤 농사도 농한기에 들어가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다. 2월께는 ‘신구간’도 있다. 이사를 하는 제주도민은 모두 이때 움직이기 때문에 가전 구매도 함께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오 지점장은 고객 관리에 가장 큰 관심을 쏟는다. 새한공조는 79년 새한전파사로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지역과 함께해 왔다. 오 지점장은 제주 출신이지만 남편인 오세문 사장은 진도 출신이다. 섬이라 외지인 텃세가 있는 제주에서 오 사장은 어쩌면 불리한 셈. 하지만 28년은 외지인이라는 의식까지도 세월에 묻어버린다.
“고객의 대소사는 거의 챙긴다”며 “많을 때는 한 달 40∼50군데, 적어도 20군데는 넘는다”고 오 지점장은 설명했다. “단골 판매가 거의 대부분으로, 구매 고객의 70∼80%가 모두 안면이 있는 사이”라고 설명했다.
새한공조의 이런 지역 밀착의 힘은 전속대리점이 갖는 강점이다. 제주 지역은 특히 직영점보다 전속대리점이 강세를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하이마트 신제주지점
하이마트의 신제주지점은 제주 최대의 격전지 중 한 곳에 있다. 신제주지점의 1차상권은 최대 성장 주택 지구인 연동과 노형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해 이미 LG전자의 하이프라자는 물론이고 이마트가 같은 상권에 있다. 내년 3월이면 롯데마트까지 진입한다.
“하이마트의 강점은 매장이 크다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경쟁사도 100평, 150평 등이라서 이점이 줄어드는 추세”라고 고형종 지점장이 말했다. 그러나 하이마트 신제주지점은 올해 95억원 매출을 기록하고 내년에는 100억 돌파를 목표로 삼는 등 규모면에서는 경쟁사를 압도한다. 제주지역의 일반적인 전자대리점은 월 매출 2억5000만∼3억5000만원 수준이기 때문이다.
고 지점장은 “구매 고객의 75%가 패밀리 카드 고객인데 우리는 나머지 25%를 잡기 위해 노력한다”며 “소리 없이 떠나는 고객을 놓치는 매장에 내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오늘의 과실은 어제 노력한 대가이기 때문에 오늘은 내일을 위해 ‘당장 눈에 안 보이는 고객을 우리 고객으로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옆에 있던 고경호 지사장이 “제주가 연고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 비가격적인 요소에 더욱 신경을 써서 할인점과 차별화를 꾀한다”고 설명을 거든다. 고 지점장은 비가격적인 요소로 음료 접대라든가 비오는 날 우산 받쳐주기 등을 얘기하다가 “역시 직원이 최대 경쟁력”이라고 꼽는다.
“2005년 지점장으로 왔을때 직원들 경력이 모두 1년 미만이었다”며 “이후 이탈 직원이 한 명도 안 생겨 지금은 모두 3년 경력자들이며 그만큼 단골 고객도 더 쌓였다”고 말하는 고 지점장. 결국 ‘비가격적 요소’를 만들 수 있는 힘은 직원인 셈이다. 그는“직원에게 고객에게는 과감히 져야 한다고 주문한다”고 말했다. 고객의 요구가 맞지 않다고 고객을 이기려 하면 그 고객은 더는 하이마트에 오지 않는다는 것.
신제주지점은 2004년 76억원 매출에서 2005년 84억원, 올해 95억원 등으로 계속 성장 중이다. 그러나 고 지점장에게는 치열한 상권 속에서 이겼다는 승리자의 여유따위는 없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디지털프라자-이도점
“‘괜당(친척)’ 문화가 아무래도 고객관리에 가장 중요하다”
삼성전자의 전속대리점인 디지털프라자이도점의 김홍근 사장은 제주 문화의 특색인 괜당에 대해 강조한다.
이도점이 위치한 곳은 제주시내의 구제주다. 본래 제주도는 고·양·부 3성(姓)이 그 시초인데 이들 3성이 처음 각기 정착한 동네가 일도동·이도동·삼도동이다. 디지털프라자이도점은 ‘일도동’ 상권에 있다. 그만큼 제주 토박이들이 중심이 된 오래된 주택가인 셈이다.
“아파트가 없고 단독주택 중심의 상권이다 보니, 최근 5∼7년 새 신시가지가 생긴 신제주보다 객단가가 20만∼30만원 낮다”고 말하는 김 사장. 그렇다 보니 무엇보다 지역 밀착형 마케팅이 필수이고 이를 위해서는 괜당문화가 소중하다. 이달 초에는 ‘일도2동 연합청년회 체육대회 겸 노인잔치’에 TV·전기요·히터 등을 경품으로 후원했다. 서울처럼 요란하고 화려한 선물은 아니지만 김 사장은 지역 행사를 꾸준히 지원해오고 있었다.
이도점은 주변 1㎞ 이내의 1차상권 못지않게 3∼4㎞ 떨어진 2차 상권도 챙긴다. 김 사장은 제주도 특유의 괜당 문화가 스며든 판매 사례를 소개했다.
“지난 가을께 도련1동 지역에서 50대 후반의 고객 부부가 전화가 와서, ‘가전 제품을 사야겠는데 집에 차가 없으니 데리러 와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며 “그래서 차로 가서 모시고 왔고 그분들이 오디오, 가스레인지를 사갔다”며 웃는다. 50대 후반 부부는 지난달에도 같은 요청을 하고 방문해 밥솥을 구매했다고 한다. 도련1동은 이도점에서 3∼4㎞ 떨어진 지역이다.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친척이란 의식인 괜당문화가 있기에 50대 후반 고객이 이런 요구를 할 수 있었고 김 사장 역시 제주 출신이기에 기꺼이 이를 수용한 셈이다. 이도점은 이 같은 열성 덕택에 92년 23평으로 시작해 2002년 63평, 2004년 100평 등으로 매강 규모를 키워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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