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제품 가격은 `고무줄`

‘출시 후 가격이 오르는 전자제품도 있다.’

 A사 구매팀에 근무하는 김모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그래픽 디자이너들을 위해 새 모니터를 구매하기로 결정하고 백화점과 용산전자상가 등을 둘러봤다. 사용자가 디자이너인 만큼 최근 출시된 모사의 30인치 와이드 모니터를 사기로 하고 각 매장별 판매가격을 비교해봤다.

 문제는 당초 해당 제조사가 출시가로 밝혔던 150만원대가 아니라 백화점과 전자상가 모두 180만원대에 판매하고 있었다. 김씨는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아 제조업체에 직접 연락해봤다. 답변은 “영업담당부서에서 백화점 등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가격을 올렸다”며 “유통점 별로 가격이 달라 가끔 있는 일”이라는 설명이었다. 김씨는 “가격을 낮춰 판매하는 것은 봤어도 되려 올리는 것은 고객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구매를 미뤘다.

 IT제품들의 가격질서가 파괴되고 있다. 공장도가격과 권장소비자가격 의무표시제 폐기 이후 고객 혼란이 나타나고 있다. 아예 가격을 빼고 제품을 출시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몇만원대라고 애매하게 표시하기도 한다. 팜플렛이나 브로셔에서 눈을 씻고 살펴봐도 가격정보는 눈에 띄지 않는다. 부가가치세 포함 여부를 아예 표시하지 않는 회사도 부지기수다. 부가세가 10%나 되기 때문에 그 여부는 구매를 결정하는데 지표가 되지만 필요에 따라 바뀐다.

 제조업체 스스로가 가격의 기준을 잡지 않고 있어 고객들은 자신의 구매 결정에 확신을 갖기가 좀처럼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제조업체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유통 마진 등을 고려한 가격이 있지만 외부에 구체적으로 표시하는 것이 더 큰 혼란을 가져다줄 수 있다”면서 “혼란을 방지하는 수준에서의 기준은 제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녹색소비자연대 김진희 사무국장은 “권장소비자가 표시제도를 폐기한 이후 되려 소비자들이 혜택을 본 점도 많다”면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최저가나 최고가 등 준거가 될 만한 가격대 정도는 중요 정보로 제시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연기자@전자신문, jy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