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발명한 그레이엄 벨이 설립한 이래 100년 넘게 통신회사의 대명사로 위용을 떨치다 기업분할, 경쟁업체 피인수 등으로 내리막길을 걸어온 AT&T가 마침내 부활했다.
지난해 말 무려 858억달러에 이르는 AT&T와 벨사우스의 초대형 합병이 미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승인을 얻으면서 유선전화·휴대전화·케이블TV·인터넷 사업 등을 거느린 공룡기업 ‘뉴 AT&T’가 태어난 것이다.
2005년 SBC가 AT&T를 인수했을 때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AT&T의 몰락’이라고 평가했지만 이번 합병으로 AT&T는 미국 유무선 전화와 인터넷서비스 시장의 과반수를 점유한 지배적 사업자로 화려하게 재기하면서 130년 간 반복돼 온 부침의 방점을 찍고 결국 미국 통신시장의 안방무대를 되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1984년 시장 독점을 막기 위한 정부 정책으로 AT&T 본사(Ma bell:엄마 벨)와 7개 지역회사(Baby bells:아기 벨)로 산산조각난 지 꼭 22년 만이다.
뉴 AT&T는 미 22개 주에서 6750만명의 전화가입자와 1150만명의 브로드밴드 가입자를 보유하게 됐으며 자본금 총액만도 무려 2200억달러로 경쟁사업자인 버라이즌의 두 배가 넘는다.
뉴 AT&T의 등장은 단순히 규모에서만 통신시장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다. AT&T가 보유하고 있는 일련의 사업군은 통신과 방송의 융합(컨버전스)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통신산업의 흐름을 주도할 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AT&T는 기존 사업인 유선 시내외전화 사업에 더해 이미 지난해 6월부터 광케이블 기반 IPTV 서비스 ‘유버스(U-Verse)’를 개시하며 합병을 앞두고 통·방융합 서비스의 초석을 다져왔다. DSL과 다이얼업 인터넷 서비스는 1000만 가입자에 육박하며 세를 불리고 있고 VoIP 서비스 ‘콜밴티지’도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 한때 자회사로 분리해 싱귤러에 매각했던 이동통신 사업을 싱귤러의 대주주인 벨사우스 합병으로 되찾아왔다. AT&T는 단계적으로 싱귤러 브랜드를 버리고 이동통신 서비스를 AT&T 브랜드로 통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6년 동안 미국 이동통신 시장의 1위 사업자로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해 놓은 싱귤러 브랜드를 과감히 포기한 데는 유선과 이동통신 간 경계가 없는 통신서비스 전략을 가져가기 위한 포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AT&T는 이미 AT&T 유선전화와 휴대전화 간 무제한 무료통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TV 광고를 시작했으며 유버스 가입자들이 휴대폰으로 TV 채널을 검색하고 프로그램을 녹화할 수 있는 TV-휴대폰 연동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브로드밴드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투자도 강화된다. AT&T는 브로드밴드 인터넷 서비스 권역을 유선전화 서비스를 제공해 온 22개 주 전역으로 확대하고 이 지역에서 매달 19.95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월정액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AT&T와 벨사우스, 싱귤러 와이어리스 각각의 네트워크를 유무선 IP네트워크로 연결하는 통합 작업도 곧 착수할 예정이다. 3개 회사의 제품 포트폴리오가 하나로 합쳐지고 고객 서비스 지원 체계도 통일된다.
에드워드 위타크레 AT&T CEO은 “AT&T는 미국과 해외를 포함한 전 세계 고객에게 혁신과 경쟁,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며 “새로운 AT&T는 기존 AT&T와 벨사우스, 싱귤러가 운영해 온 서비스들을 통합해 DSL과 무선 기술을 포함한 첨단 통신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뉴 AT&T의 출항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을 독식해 자유경쟁 체제를 흐린다는 비판이 제기되면 언제든 기업분할 문제가 다시 대두될 수 있다. 덩치가 커진만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통신시장의 환경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합병이라는 큰 산을 넘은 뉴 AT&T에 이제 2007년은 ‘제2의 도약’을 성공시키느냐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멸종된 공룡이 되느냐를 좌우할 중요한 해가 됐다.
◆주인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AT&T 브랜드
‘마 벨(Ma bell:엄마 벨)’이라는 애칭으로 사랑을 받아왔던 AT&T. 사실 미국의 통신기업은 대부분 AT&T를 모태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신장비 업체로 유명한 루슨트테크놀로지스는 1996년 AT&T의 시스템 및 테크놀로지 부문이 독립하면서 출발했고 2005년 AT&T를 인수한 SBC도 1984년 AT&T 기업분할 당시 떨어져 나온 7개 지역회사 중 하나다. 자회사가 모회사를 합병한 셈이다. 그러나 SBC는 AT&T를 인수하고도 회사의 사명을 SBC가 아닌 AT&T로 바꿔 미국에서 AT&T의 브랜드 인지도가 얼마나 막강한지를 잘 보여줬다.
이번 벨사우스와의 합병으로 AT&T 우산 안에 들어온 싱귤러 역시 2004년 AT&T 자회사인 AT&T와이어리스를 인수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췄다. 싱귤러는 AT&T와이어리스 브랜드를 없애고 싱귤러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엄청난 광고비용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AT&T 브랜드로 회귀하게 됐다.
AT&T는 싱귤러뿐 아니라 벨사우스 등 합병 전에 사용했던 여러 브랜드를 하나로 통일함으로써 마케팅 비용을 20% 줄이고 단일 브랜드로 소구 효과를 극대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주인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명품 브랜드 ‘AT&T’. 그 안에는 130년 미국의 통신산업 역사 그리고 그 장구한 세월을 꿋꿋이 이겨온 AT&T에 대한 미국인의 애정과 자부심이 담겨 있다.
◆美 통신시장, AT&T 합병 후폭풍
벨사우스와의 합병으로 거듭난 AT&T가 미국 통신시장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까.
비즈니스위크는 ‘AT&T-내 커뮤니티가 네 것보다 크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뉴 AT&T가 향후 통신시장에서의 경쟁 방식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제까지 어떤 사업자가 유선전화·이동통신·TV 등 얼마나 더 다양한 상품을 묶어서 제공할 수 있었느냐에 경쟁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앞으로는 누가 더 막대한 가입자 커뮤니티를 확보하느냐가 경쟁력의 관건이 된다는 것.
통신시장은 이제부터 서비스가 아니라 커뮤니티 싸움이다. 이미 AT&T는 브로드밴드·동영상·VoIP·TV를 융합상품으로 출시해 고객들을 하나의 커뮤니티로 묶어 나가는 ‘AT&T 유나이티’ 플랜에 착수했다.
IDC의 마크 윈서 애널리스트는 “AT&T 주도로 통신사업자들이 마이스페이스와 같은 소셜네트워크 사이트(SNS)를 모바일로 구현하는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도 크다”고 전망했다.
네트워크 중립성(Net neutrality) 논란도 뉴 AT&T의 후폭풍으로 꼽힌다. AT&T와 벨사우스 합병 인가 조건으로 AT&T가 네트워크 중립성을 준수하기로 한 데 이어 미 의회가 지난해 소멸된 네트워크 중립성 법안을 또 다시 발의하면서 불씨가 지펴진 것.
버라이즌 등 경쟁 통신사업자들은 “네트워크 중립성 법안이 오히려 인터넷에 불필요한 규제를 가져올 것”이라며 반발했지만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와 시민단체는 올해 네트워크 중립성을 IT 주요 어젠다로 밀어붙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조윤아기자@전자신문, fo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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