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로봇업계의 지상과제는 한국실정에 맞는 킬러애플리케이션을 찾는 일이다. 정부의 로봇산업 지원정책과 로봇기업에 몰려드는 돈뭉치가 한국 로봇산업의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소비자들이 진정 원하는 로봇제품은 무엇일까. 국가 경제적으로 의미가 있는 신규 로봇시장을 육성하려면 어떤 수요를 공략해야 하는가.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로봇시장의 블루오션을 찾아보자.
우리나라 건설업의 국제 경쟁력은 지난 몇년 새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취업난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이 3D업종으로 찍힌 탓에 공사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인력은 항상 부족하다. 노령화와 임금상승은 건설업계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이제 웬만한 건설현장은 외국 노동자들이 없으면 작업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다.
건설업계의 심각한 인력난은 공사현장의 인명피해 증가로 나타난다. 기능공의 부족으로 각종 공사현장에 미숙련 근로자와 여성인력이 대거 유입되면서 어이없는 안전사고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건설산업의 노령화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로봇기술은 유력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건설로봇=공사현장에 로봇 자동화 기술을 적용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깔끔한 공장의 제조라인과 달리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공사장은 로봇입장에서 예측불허의 혼란 그 자체다. 각 건물마다 설계가 다르기 때문에 로봇이 표준화된 작업을 수행하기 어렵다. 변화무쌍한 작업현장의 요구를 무인로봇에 맡기는 것도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건설작업의 안전성을 높이고 기능인력 감소를 해결하는데 로봇자동화의 확산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일본의 건설업계는 지난 80년대부터 로봇자동화 연구에 매진한 덕분에 지금은 로봇이 초고층빌딩의 골격을 세우고 콘트리트 마감, 내외장 작업까지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시미즈·오바야시쿠미·다이세이·후지타 등 일본 유명 건설업체는 자체 연구소를 통해서 다양한 건설로봇을 개발, 사용하고 있다. 유럽, 미국 건설업계도 로봇자동화에 대한 연구는 일찍부터 시작했지만 공사현장의 무인화보다 작업자의 안전확보에 매달려 실용화는 더딘 편이다.
우리나라도 건설로봇에 대한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일부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생기원이 미장로봇을 국산화했고 교량점검용 로봇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건교부는 지난달 첨단융합건설사업에 따라 빌딩철골 용접로봇과 무인 굴삭기 등 건설로봇 2종의 개발에 총 28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빌딩철골 용접로봇=수십층의 높은 빌딩을 지으려면 작업자들의 위험부담도 그만큼 높아진다. 특히 거대한 철제빔을 까마득한 높이로 끌어올려 빌딩골조를 조립해가는 용접작업은 안전사고의 위험 때문에 숙련된 기능공이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한다. 고층건물의 철골용접은 궂은 날씨에는 작업이 불가능해 연평균 2∼3개월은 공사가 중단된다. 일본 건설업체들은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빌딩철골을 따라 올라가는 초대형 로봇크레인을 설치하고 용접작업을 자동화하는 공법을 시험하고 있다. 초대형 크레인이 끌어올린 철골은 자동용접, 볼트체결로봇이 정해진 위치에 조립작업을 수행한다. 고층빌딩의 상층부를 감싼 거대한 구조체(건설로봇)가 예정된 높이까지 올라가면 빌딩골격은 이미 완성된 모습을 드러낸다. 이 로봇공법은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전사고가 줄며 무엇보다 공기가 20%나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로봇구조체를 공사현장에 설치하고 운영하는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것. 일본에는 로봇공법으로 지은 고층빌딩이 40여곳에 이른다.
국내서는 고려대가 오는 2011년까지 230억원을 들여 30층 이상 고층건물의 철골용접을 담당하는 초대형 로봇구조체 국산화에 착수했다. 한국형 철골용접 로봇의 특징은 일본에 비해 값싸고 단순한 반자동식 설계를 적용했다는 점. 따라서 실제 주상복합빌딩, 고층아파트 건설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가격대와 실용성을 갖출 것으로 기대된다. 고대 측은 이웃 중국의 엄청난 고층빌딩 건축수요를 감안할 때 빌딩골조 용접로봇의 수출 가능성도 높다는 분석이다. 삼성건설·두산건설 등도 초고층 빌딩시장에서 경쟁력 향상을 위해 로봇개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건설시공자동화연구단의 박귀태 단장은 “고층빌딩 건설에 로봇기술을 적용하면 공기단축은 물론이고 작업인력도 30%나 줄어든다”면서 “건설인력의 복지, 안전을 위해서도 이번 프로젝트는 반드시 성공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로봇 굴삭기=사람이 없어도 혼자서 땅을 파는 지능형 무인 굴삭기도 4∼5년내 실용화된다. 지뢰위험지역이나 경사진 비탈 등 위험한 작업환경에 투입하는 무인 굴삭기는 볼보·고마쓰 등 외국 중장비업체도 탐내는 전략 상품이다. 세계 4위의 굴삭기 제조업체인 두산인프라코어는 건교부 자금 120억원을 지원받아 15톤급의 중형 무인 굴삭기를 2011년까지 개발하게 된다. 회사측은 1단계로 카메라로 원격조정이 가능한 굴삭기를 내년말 선보일 예정이다. 무인 굴삭기의 핵심기술은 주변 지형의 3차원 변화를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디지털 유압제어장치로 얼마나 효과적인 제어가 가능한지에 달려있다. 장준현 두산인프라코어 상무는 “원격제어, 무인작업을 수행하는 무인 굴삭기를 국산화한다면 연간 250억달러의 세계 굴삭기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굴삭기의 무인화 기술은 불도저, 그레이더, 덤프트럭 등 여타 건설용 중장비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건설업계 전반의 생산성 향상에도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문가들은 향후 로봇시장에서 건설용 로봇의 비중을 10% 안팎으로 추정한다. 빌딩과 도로·교량·댐을 짓는 건설 중장비의 로봇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세계 건설시장의 매출규모는 연간 4조달러가 넘는다. 초기 산업용 로봇도 거대한 자동차 시장의 생태계에 기생하면서 자라왔다. 요즘 지구촌 곳곳에 우후죽순 들어서는 초고층 빌딩숲과 대형 인프라사업들은 건설로봇의 성장에 이상적인 토양이다. 로봇기술은 더욱 높고 쾌적한 공간에서 살고픈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도 아주 유용하다.
◆인터뷰-박귀태 건설시공자동화연구단장
“우리나라 건설산업이 살길은 로봇입니다. 컨버전스 시대에 건설분야도 다른 첨단기술과 융합하지 못하면 경쟁력이 없어요.” 박귀태 건설시공자동화연구단장(61)은 향후 5년간 고려대와 KIST, 대형 건설사 등 24개 기관이 참가하는 로봇크레인 구조체(빌딩철골 용접로봇)의 국산화를 진두지휘하게 된다. 국고 160억원, 기업분담금 70억원이 투입되는 로봇크레인 구조체 개발은 대학 연구단이 수주한 사상 최대의 국책사업이다. 이 건설로봇이 실용화되는 2010년대 중반에는 주요 고층빌딩 공사장 모습도 지금과는 크게 달라지게 된다. 박단장은 고령화와 3D업종 기피로 건설현장의 자동화수요가 급증하는 점에 착안해서 국내서도 건설로봇연구가 시급하다고 주장해왔다.
“요즘 건설현장에서 젊은이가 사라지고 작업인력이 급격히 노령화되면서 공사작업의 로봇자동화는 매우 절실합니다.” 그는 로봇을 건설현장에 투입하면 건설업 종사자들의 근로환경 개선과 인명사고감소, 정확하고 효율적인 시공 및 공정관리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또 기존 로봇산업 관계자들은 간과하기 쉽지만 건설분야는 로봇자동화 수요의 신천지라고 강조한다. 그는“빌딩철골 용접로봇이 확산되면 공기절감에 따른 사회적 비용절감도 연간 수조원이 넘고 한국의 IT와 인프라 수준을 감안할 때 건설 자동화의 보급면에서 미국, 일본을 앞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박 단장이 근무하는 고려대는 상반기에 건설로봇자동화센터를 설립하고 건설로봇 R&D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다는 방침이다. “요즘 건설현장에서 허드렛일은 대부분 외국노동자들의 몫이에요. 공사장에서 죽고 다치는 근로자 수도 점점 늘고 있어요. 이대로 가면 건설분야에서 중국 업체에 밀리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는 우리나라 건설산업의 경쟁력 회복에 로봇기술의 큰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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