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곽수일 서울대 명예교수(9)

(9)서울대 발전기금 모집 앞장

 1990년에는 서울대학교 김종운 총장으로부터 서울대학교 발전기금 상임이사를 맡아 기금을 모집해 달라는 간곡한 청을 받았다.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25년 이상을 재직한 조직에 조금이라도 답한다는 의미에서 수락을 하였다. 마침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AMP) 동창들의 네트워크도 확실하게 구성돼 있어 우리나라 어느 대기업과도 자연스럽게 접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이들 네트워크와 그간 사회에서 만난 지인들을 통해 열심히 모금 활동을 벌였고, 그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한 예가 서울대학교에서 기금 교수 제도를 정식으로 도입한 때다. 그 전에는 의과대학만 병원 수입을 기반으로 기금 교수 제도와 유사한 교수 임용이 있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전체적으로 교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모금하고 이것을 기금으로 교수를 임명하는 제도를 김종운 총장이 공식화하고 그 짐을 나에게 맡긴 셈이다.

 기금 교수 제도를 위한 모금을 위해 여러 기업을 접촉해 보니 예상보다 훨씬 쉽게 기꺼이 응해 주었다. 한 명의 기금 교수를 임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5억원이 되어야 했다. 이는 당시 이자율이 10% 정도로 연 5000만원의 인건비를 계산한 것이다.

 이같은 기금 교수 제도를 위한 모금에 처음으로 응해 준 기업이 눈높이 교육의 대교이다. 강영중 대교 회장이 기금 교수 제도의 내용을 듣고 흔쾌히 5억원을 서울대학교에 기부할 것을 동의해 주었다. 지금 돈으로 생각하면 10억원에 가까운 돈인데, 이를 기꺼이 기부해 주셔서 큰 힘을 얻게 되었다. 이후 쌍용정유 김선동 회장도 5억원을 기부했고, 국민은행과 기업은행도 동참해줘 짧은 시간에 10명의 기금 교수를 임명할 수 있었다.

 서울대학교 발전기금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동안 규모가 가장 컸던 것은 나산그룹 안병균 회장이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원생 기혼자 기숙사 3동을 기부해 준 것이다. 액수로는 무려 80억원이었다. 처음에는 2동만 기증하기로 했다가 학교에서 1동을 더 짓는 경우 추가되는 1동 건축비의 반을 내겠다는 설득에 총 3동을 기증했다. 이 3동은 약 120 세대로서 특히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결혼하여 학교 내에서 가족과 같이 생활하며, 필요하면 심야에도 실험실을 드나들며 연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안 회장의 기증서를 총장실에서 받을 때의 기쁨은 지금도 새롭게 느껴진다. 이 기부서 전달식 이후 나는 상임이사직을 떠났고, 낙성대쪽 후문을 출입하며 기숙사가 건축되는 것을 볼 때마다 자랑스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교문을 지나다 보니 대학원생 기숙사가 준공돼 있었다. 놀라움과 서운함이 교차했다. 기숙사를 건설하는 동안에 김종운 총장도 임기 만료로 퇴임했고 나도 상임이사직을 떠났으니 그랬는지 모르지만, 준공식에 김종운 전임 총장만 초대하고 정작 이 모든 기부를 유치한 교수인 나에게는 준공식조차 알리지 않은 때문이었다.

 학교를 위해 어려운 일을 마다않고 나선 이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그에 맞는 예우를 해 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느 교수가 대학 발전에 앞장서겠는가. 서울대학교 및 교육부 직원들의 행정 능력과 행동 양태가 바뀌기를 기대해 본다.

 skwak@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