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부터 경영대학 학장을 맡았다.
마침 외환위기(IMF)가 터지면서 경제가 어려워지고, 기업 구조정에 따라 고급인력이 대거 거리로 내몰리던 때여서 경영대학 학장으로서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재교육’이었다. 이들 고급 실업자의 양산은 일시적이고, 따라서 이들 실업자를 학교로 불러들여 재교육을 시키는 것이 위기에 처한 국가를 살리는 일이자 대학의 의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렇게 해서 관리자 과정을 임시로 급조했다. 이 관리자 과정은 서울대 관악 캠퍼스에서 두 번에 걸쳐 각각 6개월간 실시됐다. 수업료는 일체 무료였다. 배울 의욕만 있는 실업자라면 누구든 지원할 수 있었다. 직업을 잃은 은행원이나 기업체 간부들을 한 번에 70명씩 선발해 무료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의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훗날 IMF 위기가 극복되던 때, 강남에 있는 한우리라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식당 총지배인이라는 한 정장을 입은 신사가 느닷없이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하며 ‘학장님 정말 감사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총지배인은 모 은행 부장으로 있다가 구조조정으로 실업자가 된 차에 서울대 관리자 과정을 6개월을 다닌 이로 연수 후 식당 총지배인 자리에 응모, 채용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울대에서 6개월간 무료 관리자 과정을 다닌 것이 너무 고마웠고 유익하더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중에 이 식당에 가서 다시 총지배인을 찾았더니 어느 공기업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참 반가운 소식이고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됐다.
재작년 녹십자 의료원에서 건강진단을 받다가 병이 발견돼 급하게 수술을 받았다. 워낙 큰 병이라 외부에 알리지 않으려고 쉬쉬했으나, 알고 보니 나만 빼고 세상 친구들 모두가 내 수술을 알고 있었다. 지난 1994년 같은 녹십자 의료원에서 수술을 받은 이후 두 번째였다. 당시 수술도 몇 달만 늦었으면 세상을 떠날 뻔한 큰 수술이었다.
수술을 통해 죽음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에 대한 생각들도 바뀌고, 가족의 소중함도 절실히 느끼게 됐다. 특히 2개월이나 입원해 있는 동안 성심껏 간호해 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은 잊을 수 없다.
아마도 아내의 정성과 노력이 없었다면 교수로서 평생을 바친 내 인생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나를 있게 한 존재는 바로 내 아내임을 다시 한번 밝혀 두고 싶다.
skwak@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