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구로디지털밸리로 이전한 한국하이네트의 김현봉 사장은 구로의 변화상에 만족한다. 당시 여의도에서 구로로 이전하며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불과 2∼3년 전 만해도 ‘구로’에 회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급인력들을 뽑기 어려웠다. 면접을 통과했던 인력조차도 입사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김 사장은 “이제는 구로에 있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 정도로 대외 인지도가 크게 호전됐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집중 면접 취재를 한 대부분의 CEO들은 “벤처가 점차 늘어나는 만큼 앞으로 시너지효과가 클 것”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이는 본지가 한국산업단지공단 서울지사와 공동으로 구로디지털밸리 소재 업체의 CEO 22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잘 나타난다.
설문 결과, 구로 소재 벤처기업 CEO의 66.7%가 ‘구로디지털밸리밸리에 입주한 것에 대해 만족하다’고 응답했다. 30.7%가 ‘보통’이라고 대답했으며, ‘만족하지 못한다’라는 응답은 2.2%에 불과했다. 이들 응답자 가운데 구로에서 창업한 CEO는 14.7%에 불과하고 강남 테헤란밸리, 여의도 등 다른 지역에서 이전한 응답자가 85.3%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다.
지난해 초 구로디지털밸리로 이전한 김진수 트리니티소프트 사장은 “구로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구로 이전을 걱정했다”면서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져 구로에 있다고 하면 당연히 벤처인 줄 알게 돼 오히려 사업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만족도가 이처럼 높은 것은 잘 알려진대로 저렴한 임차료 등 경제적인 문제가 크기는 하지만 구로에 대한 대외 인지도의 변화가 한몫했다. 실제 사업을 하고 있는 구로 지역 업체 CEO들의 체감온도도 바뀌었다. 응답자 225명 CEO 가운데 ‘과거에 비해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응답한 CEO는 무려 88%에 달했다. ‘보통이다’는 응답에는 10%, 과거에 비해 나빠졌다고 응답한 CEO는 0.8%에 불과했을 정도다.
김정수 공영DBM 사장은 “여의도에서 초기에 구로디지털밸리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망설였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대외적인 환경이 변하고 있어 구로디지털밸리의 성공가능성도 높은 만큼 잘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CEO들은 동종 업체가 몰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동종 혹은 이종 업체간 시너지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응답자 가운데 이미 시너지 효과를 본 적 있다고 대답한 비율은 28.9%, 앞으로 시너지효과를 볼 것이라는 긍정적인 대답을 한 응답자도 48.9%에 달했다.
그러나 해결과제도 만만치 않다. 구로지역 CEO 225명 가운데 60.4%가 교통문제 해결이 구로디지털밸리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문화시설 확충(16.9%), 비즈니스센터 설립(12%), 정부의 추가지원 (7.1%)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우량 기업이 늘어난다
구로디지털밸리의 성장은 우량 기업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 양적 팽창에 이어 검증된 기업들이 속속 입주하고 있는 것. 최근 입주 업체들은 평균 5년 이상 업력으로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뿐만 아니라 코스닥 상장 업체도 늘어나는 등 디지털단지가 우량 기업의 집산지로 변모하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벤처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서울디지털단지에 입주한 업체 중 벤처 인증을 받은 기업은 753개에 이른다. 지난 2004년 12월 404개에 불과했던 것이 비하면 배 이상 성장한 수치다. 벤처 인증을 받았다는 것이 우량 기업의 잣대는 아니지만 최소 기업 자생력을 어느 정도 갖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같은 기간 강남 테헤랄밸리에서 벤처인증을 받은 업체 증가는 50여개에 불과했다.
이 같은 변화는 디지털단지 입주 업체가 과거와는 달리 어느 정도 우량 집산지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스닥 상장 업체 증가수나 입주 업체 생산액 증가 추이를 보면 이를 쉽게 알 수있다. 지난 99년 단지 내 업체들의 총생산액은 4000억원 정도였지만 2006년 말 현재 10배가 넘는 4조500억원으로 성장했다. 업체 수가 급증한 탓도 있지만 그 만큼 섬유 등 큰 매출액을 차지하던 업체들이 추줌한 것은 감안하면 괄목할 만 성장세다.
또 산업을 이끄는 ‘업종 대표 기업’도 속속 입성하고 있다. 각 분야 1위 업체가 입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업 간 경쟁과 협력을 바탕으로 한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되고 있다. ‘PC주변기기’가 대표적인 예. 지난 2003년 조립PC업체 앱솔루트코리아가 처음 구로공단에 자리 잡았을 때만 해도 이 지역 PC주변기기 업체는 전무했다. 하지만, 업계 1, 2위를 다투는 앱솔루트가 이 지역에 터를 잡고 나서 구로공단은 제2의 용산 전자상가로 변모했다. 앱솔루트와 협력·경쟁 관계에 있는 거래 업체도 속속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이런 풍선효과는 인터넷, SW서비스 등 전방위 IT산업으로 퍼지고 있다는 평가다.
이와 함께 코스닥 상장 업체수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 99년 10여개에 불과했던 코스닥 상장 업체는 2006년 12월 현재 59개로 늘었다. 구로디지털밸리에 입성해 코스닥 상장에 성공한 기업도 늘고 있는 것도 새로운 양상이다. 오늘과내일, MDS테크놀로지, 윈포넷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윈포넷(대표 권오언)은 가장 성공한 기업 중 하나으로 뽑힌다. 구로에서 창업해 지난해 코스닥에 회사를 올려놨기 때문이다. 이 회사 권오언 사장은 “창업 당시 10여명의 직원으로 시작해 현재 매출 500억원 회사를 일궈냈다”고 말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측은 “과거에 대형 섬유업체가 성업 중일 당시보다 평균 매출액은 줄었지만 오히려 업체당 수익은 매년 급증하고 있다”며 “수익이 높은 IT기업이 전체의 80% 이상 차지하고 있있고 경쟁력 있는 업체들도 속속 입주하고 있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산업변천사의 거울, 구로
최근 구로의 변화는 국내 산업 변천사와 궤를 같이 한다. 지난 60년대 섬유 산업이 주를 이루던 한국 경제는 70년대 중공업이 뒤를 이었고 80년대 들어선 전자산업이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이후 90년 대엔 IT산업이 국가 차세대 동력으로 등장, IT한국의 이미지를 완성했다.
지난 64년 한국 첫 국가 공단으로 조성된 ‘구로 공단’은 설립 당시 섬유, 봉제 등 노동 집약적 산업이 주를 이뤘다. 재일교포 기업이 투자해 만들어진 만큼 기술 이전 속도가 빠른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의지 때문이다. 지난 66년 섬유 및 봉제가 전체 수출액의 44%를 차지했고 구로 공단 입주 업체도 80% 이상이 이 분야 종사 기업이었다.
70년대엔 가발 산업이 구로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극했다. 가발 산업은 70년대 이후 최대 호황이었다.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 흑인 인권이 신장하면서 이들의 바잉파워(Buying Power:구매력)이 급증한 탓이다. 70년대 후반 전자 업체가 구로공단에 속속 등장한다. 75년 이후 정부는 중공업 육성 정책을 발표하면서 전자산업이 섬유를 있는 주력 산업으로 등장한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조립 금속 업체 중 대부분이 이 당시 설립된 업체다.
86년 수출 50억달러를 기록, 정점을 달성했지만 87년 이후 노동 집약적 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잃으면서 수출이 점차 감소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90년대 구로공단 변화는 종이 인쇄업 증가에서부터 시작됐다. 공단에 입주한 종이 인쇄업은 87년 25개사였으나 92년 40개사로 급증했다. 구로 변화는 90년대 후반 IT로 옮겨갔다. 97년 IMF 구제 금융이 결정적 단초를 제공했다. 국민 정부가 발표한 벤처기업 육성책으로 신생 벤처기업이 구로로 모이기 시작했다.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구로는 IT기업의 집산지로 커 나가고 있다. 이는 구로가 국내 산업 변화 흐름을 대변하는 ‘대표 공단’ 역할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다. 현재 구로공단에 입주해 있는 IT기업은 4500여개로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한국 수출액 중 전자산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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