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LG전자가 세계 처음으로 출시한 블루레이·HD DVD 겸용 차세대 DVD 플레이어인 ‘슈퍼멀티블루(SMB)’. 지난달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인 ‘CES 2007’에서도 관람객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SMB는 전시회 직후 IT 전문매체인 ‘C넷’으로부터 올해의 제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가장 크게 어필했던 점은 기술적인 난이도보다는 블루레이냐 HD DVD냐를 놓고 선택을 강요당한 소비자의 고민을 덜어준 것이다. 아직은 양대 기술진영이 나뉘어 주도권을 다투는 탓에 타이틀과 플레이어를 제각각 구입해야 했던 부담을 덜어주고, 기술논쟁에도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다.
◇기술표준에 한발 앞서=최근 들어 전 세계 IT 시장에서 국내 업계가 치열한 기술경쟁 구도에 종지부를 찍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해외 경쟁사들보다 한발 앞선 연구개발(R&D)로 새로운 기술표준을 만들어내거나 혁신적인 제품을 통해 기술표준 논쟁에 해결사 노릇을 하는 경우, 또는 전통적인 한계를 넘는 전혀 다른 발상으로 소비자에게 새로운 선택권을 주는 사례들이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9월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신개념 ‘CTF(Charge Trap Flash) 낸드’ 기술은 지난 35년간 세계 반도체 업계를 지배해왔던 50나노 공정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일본 도시바가 처음 개발한 낸드플래시는 전통적으로 ‘플로팅 게이트’ 기술이 바로 표준이자 철칙으로 여겨졌던 분야. 플로팅 게이트 기술로는 나노 공정의 한계인 50나노급을 넘지 못했지만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CTF 낸드 기술은 40나노급 이하로 발전시킬 가능성을 열며 차세대 반도체 공정기술의 표준으로 떠올랐다.
◇업계 ‘통념’ 바꾼 제품 출시=이에 앞서 지난 2004년 본격 선보이기 시작한 LG전자의 5세대 디지털(D)TV 수신칩은 미국식 전송방식(ATSC)의 기술논쟁을 정리한 해결사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신성능이 취약한 미국식 전송방식은 자국 내 방송사로부터도 기술적인 문제점을 놓고 공격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미국식의 한계를 앞장서서 지적했던 미국 싱클레어사가 LG전자의 5세대 수신칩이 수신성능 한계를 완전히 극복했다는 것을 확인한 뒤부터 상용화는 급속도로 진전됐다. 최근 5세대 수신칩에 비해 30%나 수신성능을 향상시킨 6세대 칩이 상용화 단계에 들어가면서 북미 디지털TV 시장의 기술논쟁은 이제 옛말이 돼버렸다.
업계 통념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소비자를 항상 갈등케 했던 ‘주류’적인 제품의 컨셉트도 국내 업체가 바꿔버린 예도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미국 시장에 선보인 ‘지펠 콰트로’ 냉장고는 4개의 저장고에 4개의 별도 냉각기를 각각 장착해 소비자 입맛에 따라 냉동고를 최대 3개까지 늘려 쓸 수 있는 제품이다. 반대로 냉동고를 1개만 사용하고 나머지 3개는 전부 냉장고로 이용할 수도 있다.
전통적으로 냉동 가공식품이 많은 북미 지역 사용자에게는 냉동고와 냉장고 가운데 어느 쪽이 큰 제품을 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덜어준 것이다. 냉장고가 냉동고보다 큰 제품이 전통적인 ‘표준’이었다면 지펠 콰트로는 소비자 선택권을 표준으로 내세운 전형이다.
이희국 LG전자 사장(CTO)은 “이 같은 사례들은 해당 기업은 물론이고 국가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섰다는 점을 보여준다”면서 “향후 기술표준 역량을 한층 더 강화하고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한기자@전자신문, hseo@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최근 국내 업계의 대표적인 기술경쟁 주도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