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달러의 로얄티 전쟁’
7500억달러로 추산되는 통신 시장에서 6달러는 극히 작은 금액이다. 하지만 세계 최대 휴대폰 업체 노키아와 세계적인 모바일 칩 업체 퀄컴에게는 그렇지 않다. 6달러는 바로 노키아가 퀄컴에 내는 대략적인 휴대폰 대당 평균 기술 사용료(로열티)다.
노키아와 퀄컴의 CDMA 로열티 협상 시한이 임박했다. 지난 92년 첫 체결한 두 회사의 로열티 협약은 오는 4월9일 끝난다. 불과 두 달 앞이다. 이미 전 세계 통신업체의 눈과 귀는 두 거인의 ‘로열티 전쟁’에 쏠리고 있다. 협상 결과에 따라 CDMA는 물론 GSM 진영까지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기업은 각각 ‘CDMA 진영 맹주’ ‘휴대폰 제왕’이라는 명성만으로 사전 흥행에 성공한 상태다. 여기에 WCDMA와 같은 3세대(G) 통신 선점 여부, 미국·유럽을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상징성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본 게임 전부터 치열한 눈치 작전이 진행 중이다.
# 퀄컴·노키아, “양보는 없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금까지도 누가 ‘조커’를 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난해 두 업체는 이미 “한 발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못 박아 논 상태다. 협상 시한이 코 앞이지만 전혀 타협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신경전만 치열해지고 있다. 서로의 속내를 철저히 감추며 판 자체를 아예 뒤집을 수도 있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완전한 ‘포커 페이스’다.
먼저 선방을 날린 것은 노키아다. 노키아는 “퀄컴이 차별없는 조건으로 특허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국제표준화기구 규정을 위반했다”며 EU 공정위원회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비싼 로열티를 거론하며 산요와 CDMA 합작사 설립을 중단하는 ‘강수’를 두며 퀄컴을 압박하고 있다. 올리 페카 칼라스부오 CEO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노키아의 휴대폰 수익률은 지난해 17%에서 15%로 감소하는 등 갈수록 줄지만 로열티는 변함이 없거나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라며 “불공정한 거래”라고 선언한 상태다.
퀄컴의 카드도 만만치 않다.
윌리엄 케이텔 퀄컴 CFO는 포천과 인터뷰에서 “92년 노키아와 계약 당시 37개 특허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대략 출원 중인 특허까지 포함하면 5200여 건에 달한다”며 “특허 건수는 크게 늘었지만 특허료는 변함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특허료로 올리는 수입 대부분은 CDMA 기술과 시장을 키우는 데 쓰이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최종 협상을 앞두고 장외에서도 퀄컴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다. 퀄컴은 최근 영국에서 노키아가 특허권 2개를 침해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미 미국에서도 퀄컴은 노키아가 무선 기술 특허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소송을 낸 바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G 당시에는 CDMA 단말에 제한된 퀄컴 특허가 유럽세를 자극하지 않았지만 3G 하나인 WCDMA의 경우 유럽에서 세력을 넓히면서 유럽 진영의 위기 의식도 반영 되었다”며 “로열티 분쟁은 3G 나아가 4G 기술이 무르익어 갈수록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퀄컴, ‘운명의 4월’
두 거인이 ‘일전’을 앞둔 가운데 산업계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두 진영을 대표한 대리전까지 예상되고 있다. 지금까지 분위기는 퀄컴 쪽이 다소 밀리는 상황이다. 주요 통신장비 업계와 각국 규제 기관 등을 중심으로 퀄컴 로얄티를 다시 보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는 ABI리서치 조사 결과도 한 몫했다. ABI는 ‘휴대폰 로열티 현황’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GSM·CDMA·HSDPA·와이맥스 등 주요 지식재산권(IP)에 따른 단말기 로열티를 조사한 결과, WCDMA가 9.4%로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시장조사 업체 포워드 컨셉트의 월 스트라우스 수석연구원은 AP와 인터뷰에서 “퀄컴의 로열티 징수에 대한 업계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퀄컴 기업 역사를 다룬 ‘퀄컴 방정식’의 저자 데이브 마크 조차도 “수 많은 IT기업이 로열티로 먹고 살고 있지만 퀄컴처럼 광범위한 저항에 직면한 기업은 드물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퀄컴 측은 CDMA 발전을 위해 일정 부분의 로얄티는 필요하다며 맞서고 있다.
퀄컴과 노키아에 4월은 잊지 못할 ‘운명의 달’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
◆퀄컴, 로얄티 수입 규모는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퀄컴은 CDMA 원천기술 업체다. 지난 8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출발했으며 전 세계 30여개국에 지사를 두고 있다. 퀄컴 사업 분야는 통합 CDMA 칩세트에서 시스템 소프트웨어, 무선인터넷 플랫폼 ‘브루(BREW)’, cdma2000 1xEVDO, 기술 라이선스, 인공 위성 시스템까지 다양하다.
지금의 퀄컴을 만든 일등공신은 단연 CDMA 기술이다. 퀄컴은 1900개 미국 특허를 비롯해 3200개 이상 특허를 출원한 말 그대로 CDMA ‘맹주 기업’이다.
특히 퀄컴은 여러 사업 모델 가운데 기술 라이선스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퀄컴 정기 회계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매출 75억3000만달러 중 37% 정도를 라이선스와 로열티 부문에서 올렸다. 이는 2005년 34%보다 올라간 수치로 갈수록 라이선스 사업의 비중이 높아가는 추세다.
퀄컴은 세부 로열티 명세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다. 단지 전 세계 135개 업체와 라이선스 계약을 하고 휴대폰 도매 가격의 평균 5% 이하를 기본 로열티 수입으로 징수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계약 규모에 따라 단말기 한대당 5∼20달러까지 다양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5% 이상’이라는 게 정설이다. CDMA를 상용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우리의 경우도 5%를 넘어선다. ETRI가 국정 감사에서 밝힌 로열티 규모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단말기의 경우 5.25∼5.75%, 시스템은 6∼6.5%를 내고 있다. 단말기를 수출할 때도 5.75%의 기술료를 내야 한다.
퀄컴은 지난해 12월 마감한 ‘2007 회계연도 1분기(2006년10∼12월)에도 6억4800만달러 순이익을 기록해 전년 동기에 비해 이익 규모가 5% 늘어났다. 반면에 대부분의 휴대폰과 장비업체는 소니에릭슨을 제외하고 전년 수준이거나 기대에 크게 못미쳤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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