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산업 활성화의 기치를 내걸고 출범했던 각 지역 벤처기업협회가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뛰는 벤처에 기는 협회다. 요즘 벤처기업들은 더욱 세련된 입체적 첨단 지원서비스를 요구하는 반면에 협회는 소식지 발간이나 투자유치설명회 등 영양가 없는 지원에 머물러 있다.
차별화된 지원서비스를 발굴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사업을 할 수 있는 재원도 없다. 그나마 회원사로부터 거둬들인 회비는 사무국 직원들의 인건비로도 빠듯하다.
◇회원사 회비로는 한계 불가피=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사업비와 운영비를 지원받는 테크노파크와 진흥원과는 달리 전액 회비로 사업을 꾸려가야 하는 협회로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지난 2005년 서울 벤처기업협회(KOVA)와 결별을 선언하고 사단법인으로 출범한 대구경북벤처기업연합회는 회비를 내는 유료회원사가 150개사에 달하지만 회비규모는 몇천만원에 불과하다. 이 같은 회비로는 사무국 직원 3명의 인건비도 충당하기 힘든 실정이다.
지난 2005년까지 대구테크노파크의 동대구촉진지구사업예산으로 행사를 진행했던 대구첨단벤처기업인대회도 지난해는 예산지원이 중단돼 행사를 못 열 뻔했다.
지난 2002년 3월 광주전남벤처기업 90여개사가 모여 출범한 무등벤처밸리의 경우 회원사가 회비납부를 기피하는 바람에 불과 1년 만에 해체됐다.
당시 회원으로 가입한 김모 사장은 “지역에서 의미 있는 모임을 만들자는 취지로 출범했지만 정작 회비를 내고 활동할 만한 기업이 없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며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회비로 운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차별화된 지원사업도 없어=빈약한 재원은 결국 지속적인 사업을 불가능하게 했다. 협회 사무국은 존립을 위해 회원사들로부터 회비납부를 독촉하는 것이 최대의 관심이 되고 말았다. 재원에 허덕이는 이 같은 환경에서 제대로 된 지원사업이 있을 리 없다.
대구경북벤처기업연합회는 첨단벤처활성화사업으로 지자체 장 초청 간담회와 월간 소식지 발간, 벤처기업투자설명회 등을 여는 것이 고작이다. 그나마 지난해부터 시작한 e카탈로그 제작사업이 호응을 얻는 정도이다.
올해로 출범 10년을 넘은 대덕이노폴리스벤처협회도 일부 사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업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지난 2년 전 마케팅협의회, 재무회계협의회 등을 신설하며 의욕적인 출발을 보였지만 현재는 유명무실한 조직으로 남아있다. 또 정책발굴을 위해 설립한 부설정책연구소도 현재 정책발굴보다는 외부 용역과제를 수주하는 데 급급한 곳으로 전락했다.
무등벤처밸리의 경우 문을 닫게 된 1년 동안 변변한 세미나 한번 개최하지 못했으며, 90년대 후반에 설립된 벤처기업협회 부산지회도 뚜렷한 사업 없이 협회의 명맥만 유지하는 데 급급했다.
◇개인용도로 전락한 협회=일부지만 벤처협회 활성화는 뒷전이고 협회 회장단 직함을 내세워 사적으로 활용하려는 사례도 있다.
모 지방의 벤처협회 회장의 경우 출범 초기 협회 사무국 직원을 자기 회사 직원처럼 부리는 경우도 있었다. 또 협회의 활동에는 관심이 없어 한 달에 한 번도 사무국에 얼굴을 내밀지 않다가 회장단 직함은 자기 회사의 마케팅에 활용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벤처협회 2.0을 기대하며=그러나 지방 벤처협회는 아직도 벤처기업의 희망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없지만 적은 재원으로도 기업에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는 순수한 모임이다. 회원사들의 관심만 있다면 그 어떤 조직보다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부산벤처기업협회가 지난해 2월 출범했다. 설립 초기 30여개 기업이던 회원사가 설립 1년 만에 101개사로 늘었다. 대덕이노폴리스벤처협회도 이달 말 새로운 회장단이 출범할 예정이며, 대구경북벤처기업연합회도 오는 3월부터 현 회장이 앞으로 1년 동안 그간 못다했던 사업을 펼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각 지방 벤처기업인들은 새로운 출발을 앞둔 각 지방 벤처기업협회가 앞으로 회원사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소모임을 활성화하고 밀착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발굴해 ‘벤처협회 2.0’시대를 열어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대구=정재훈기자@전자신문, jhoon@
광주=김한식기자@전자신문, hskim@
대전=신선미기자@전자신문, smshin@
부산=임동식기자@전자신문, dslim@
◆인터뷰-오권석 부산벤처기업협회장
“무엇보다 지역 벤처기업이 많이 참여해야 합니다. 뭉쳐서 한목소리를 내야 정부나 지자체가 관심을 보일 테고 우리의 요구 또한 수용할 것 아니겠습니까.” 오권석 부산벤처기업협회 회장(화창SSC 대표이사)은 지역 벤처기업의 단합과 이를 통해 한목소리를 내는 것에서 지역 벤처기업협회 활성화의 해법을 찾았다.
유명무실했던 과거 지역 벤처협회 이미지를 털고, 지난 1월 새로이 부산벤처기업협회를 조직해 이끌어오고 있는 그에게 있어 ‘똘똘 뭉친 강한 협회’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당연해 보인다. 그래서 협회 재창립 이후 1년여 동안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협회를 알리고 지역 벤처기업을 협회 울타리로 이끄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뭉쳐보자, 그래서 단합된 힘으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요구하고 얻어내자’는 생각에 협회장직을 수락했다”고 그는 말했다.
“솔직히 현재 협회가 회원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기업에 필요한 정부지원 제도나 시 차원의 지원책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알려주는 정도지요. 하지만 회원수가 늘고, 지역 벤처기업의 대표 단체로 자리매김하면 회원사에 돌아갈 혜택이 많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 일단 모여야하고 서로 힘을 보태야 합니다.”
지난해 협회 재창립 당시 30여개에 불과했던 회원수는 오 회장과 집행부의 회원배가 노력에 힘입어 1년여 만인 이달 초 100개를 넘어섰다. 올해는 200개사가 목표다. 이달 26일에 정기총회를 열고 사단법인으로 공식 출범해 부산시와 정부 및 기업 지원기관의 공식적인 협회 지원을 이끌어낼 계획이다. 또 지난해 시작한 부산벤처투자마트를 양적 질적으로 확대해 각 회원사의 자금난에 숨통이라도 틔워주는 행사로 만든다는 방침이다. 오 회장은 “기업은 기업대로 협회는 협회대로 재정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올해는 기업의 막힌 자금줄과 협회의 재정난을 해소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분위기와 반응이 매우 고무적입니다. 지방중기청은 물론이고 그동안 관심이 부족한 것으로 비쳐지던 시에서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고 있습니다. 기업 참여도 갈수록 높아집니다. 비록 부산벤처기업의 비중이 전체 벤처기업의 5%도 채 안 되지만 가장 활발한 협회가 될 것이라 자신합니다.”
부산=임동식기자@전자신문, dslim@
◆벤처협회의 태동과 쇠락
지난 1998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는 새로 취임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식과 함께 부대행사로 벤처포럼이 성대하게 열렸다.
본격적인 벤처기업 시대를 여는 서막이 된 이 행사를 기점으로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벤처만이 절망의 늪에서 희망을 건져 올리는 유일한 대안처럼 여겨졌다.
벤처기업협회는 이보다 3년 전인 1995년 말 발족했다. 이민화 초대회장은 5년 동안의 재임기간 중 벤처기업특별법, 채권담보부증권 등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며 벤처산업의 형태를 갖추는 데 노력했다.
벤처기업의 자금난 해소를 위한 코스닥시장이 이듬해인 1996년 7월 개설됐다. 또 1997년 8월에는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면서 벤처로 돈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정부가 벤처확인제도를 실시한 1998년 벤처기업 수는 2042개사였으며, 1999년에는 4934개에서 2001년에는 1만1400개사로 급격히 늘었다. 새롬기술과 골드뱅크 같은 벤처스타기업도 이때 등장했다.
‘눈먼 돈’이 몰려들기 시작한 코스닥 시장은 개설된 지 2년 만에 13배로 급팽창했으며, 코스닥 지수는 240% 이상 상승했다.
그러나 2000년에 접어들면서 벤처 거품이 본격적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거품이 걷히면서 벤처기업의 육성을 위해 출범했던 각 지방의 지회들도 점차 활기를 잃게 됐다.
대구=정재훈기자@전자신문, j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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