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전자 新 유통여지도](17.끝)에필로그

전국 유통의 지도가 변하고 있다. 2000년 이후 불어온 ‘매장의 대형화’와 ‘삼성전자·LG전자의 전속 매장 재강화 전략’, ‘하이마트의 급성장’등을 그 축으로 한다. 위기 요인도 적지 않다. 인터넷쇼핑몰의 등장과 성장, 그리고 인터넷 가격과 오프라인 가격간 비교 경쟁의 시작은 새로운 도전이다. 이마트 등 할인마트는 전국 상권을 장악하며 가전 및 전자제품 유통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신유통여지도 기획을 통해 전국을 15개 지역으로 나눠 이같은 가전 및전자제품 유통의 현장을 돌아봤다. 현장의 지점장들은 입을 모아 고객 관리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또한 고객과 가장 먼저 만나는 직원들의 능력이 얼만큼 매장의 매출을 좌우하는지, 그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현재 전국 상권에서 10년∼30년간 매장을 운영해온 지점장 또는 대리점 사장들은 이미 앞서 변화의 흐름을 읽고 철저한 지역 밀착 경영으로 활로를 찾아내고 있었다.

성호철기자@전자신문, hcsung@

◆대리점도 세대교체 바람

 가전 및 전자제품 대리점은 이제 2세 경영 시대를 맞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개척한 대리점을 이제 30대 전후가 된 자녀가 경영 수업을 통해 전면에 나서는 대리점이 적지 않다. 이는 1세대에 해당하는 지금의 대리점 경영주들이 80년대 전후에 뛰어들어 이제 50대, 60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합쳐 50여 대리점이 이미 2세가 매장 경영을 맡고 있거나 경영 수업 중이다. 이 같은 현상은 특히 영남 지역에서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난다. 일례로 삼성전자 남부지사에는 합천, 남해, 진주 도동 등 총 17개 대리점이 이미 2세 경영을 시작했거나 계획 중이다. 남부 52개 매장 중 30%에 해당한다. 또 LG전자 남부팀에도 10여개 대리점이 2세 경영에 나선 상황이다. 2세 경영 체제로 넘어가는 매장 수는 앞으로 증가 추세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셈이다.

 따라서 2세 경영에 대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관심은 뜨겁다. 특히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2세 경영주 지원에 팔을 걷어붙인다.

 삼성전자 유통연수소는 이달부터 ‘2세 경영주 아카데미 과정(가칭)’을 개설하고 삼성전자 전속대리점주의 자녀 교육을 맡아 지원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해 대리점 2세 경영주를 위해 현장 실습 등의 지원을 사례별로 지원해왔는데 이번엔 2세 경영주 지원만을 위해 별도의 교육 과정으로 만든 셈이다. 그만큼 삼성으로서도 새로운 파트너인 이들 2세 경영주의 경영 능력 향상에 관심을 쏟는 셈이다.

 이제 대리점도 20∼30년 전처럼 ‘구멍가게’ 수준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고객관리에서 매장관리, 직원관리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경영 능력이 요구된다. 대리점별 매출도 많은 곳은 100억원에 달하기도 한다. 중소기업 규모다.

 LG전자도 2세 경영주만을 위한 특화된 교육체계를 갖추지는 않았지만 교육의 문은 열려 있다. 대리점주 교육 시 희망할 경우 2세 경영주도 참여해 2세 경영 시대를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2세 경영 시대의 도래는 우리나라 대리점이 또 다른 시대의 변화라는 측면이 강하다.

 1세대는 국내 대리점 변화의 물결을 그대로 이어받아 지금에 이른다. 그리고 지금은 대리점 매장 규모가 100∼200평대고 판매 품목도 LCD·PDP TV, 에어컨, 드럼세탁기, 김치냉장고 등 대형가전 중심으로 재편됐다. 여기에 다리미 등 소형가전과 노트북, 데스크톱 등 PC제품도 모두 취급하는 ‘가전 및 전자제품 종합판매점’의 면모를 확립했다.

 2세대는 이 같은 기반 위에서 새로운 대리점 운영 모델을 확립해야 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우선 대형화라는 현재의 추세에 대한 마침표가 필요하다. 현재 국내 가전전문점은 200∼400평 규모가 대형화의 마지노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 출현하지는 않았지만 일본식의 1000평이 넘는 매장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대리점으로선 그러나 현재의 대형화 추세 속에서 각 지역에 적절한 ‘맞춤 규모’를 안정화시켜야 할 시점이다.

 이마트로 대변되는 새로운 경쟁체제에도 적응해야 한다. 할인점이 가전 유통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벌써 20%를 넘어선데다 향후 2∼3년간 어느 선까지 올라갈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장의 대리점들은 어떤 형태로든 할인점과 경쟁관계 속에서 자리매김해야 할 형국이다. 1차 상권이든 2차 상권에서든 경쟁은 불가피하다.

 또 옥션과 G마켓 열풍으로 자리잡은 e마켓플레이스(이른바 오픈마켓)와도 적절한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 옥션과 G마켓은 급속한 성장세지만 아직 시장점유율은 미미하다. 하지만 가격 경쟁력을 통한 시장 가격 파괴의 위력은 시장 점유율과 상관없이 전체 시장을 흔드는 뇌관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2세 경영체제의 전환은 현재로선 긍정적이다.

 삼성전자의 디지털프라자 청주 복대점은 미국 유학파인 정종옥 대리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얼마 전에는 국내 최고의 매장인 강서 본점에서 한 달 동안 고객응대 및 판매 관리 등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30년간 현장을 뛴 아버지 세대의 노하우와 삼성전자·LG전자라는 국내 최대 기업의 경영시스템으로 무장한 2세들의 시대는 이제 첫발을 뗀 셈이다.

◆노장은 사라져갈 뿐이다

 현장을 이해할 수 있는 이는 오직 현장지휘관뿐이다. 전체 작전을 지휘하는 사령관은 그 나름대로 전체 전선의 전략을 세우며 전쟁의 역사에서 승리자 또는 패배자로 한 줄 이름을 남긴다. 현장지휘관은 그러나 소총을 들고 사병들과 밤을 지새운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노장이다.

전국의 하이마트 250여 지점을 비롯해 삼성전자의 디지털프라자와 LG전자의 디지털LG 전속유통점에는 노장이 즐비하다. 그들은 죽지 않는다.

하이마트의 춘천점 김주일 지점장은 그런 하나의 사례다. 사실 춘천은 인구 증가 정체에다 이마트라는 대형할인점의 진입으로 ‘격전장이면서 전체 시장 규모는 오히려 줄어들 수 있는’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김 지점장은 1984년 대우유통센터로 입사해 줄곧 춘천이란 현장에서 판매를 맡아온 인물이다. 현재 하이마트 전체 지점 중 매출 순위 10위다.

김 지점장은 “아마 내가 하이마트 지점장 중엔 최고참축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노장에겐 노하우가 있다. 그에겐 ‘지역 사랑’이 그것이다. 강원도 지역이 기반이니 강원도를 도울 일에 고심한다. 강원도(영월)산 고춧가루를 김치냉장고 판매 사은품으로 내놓은 것도 그런 맥락이다. 강원도 감자나 철원쌀 홍보에 한참을 공을 들이기도 했다.

김 지점장은 전국 수많은 노장들의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디지털LG, 디지털프라자 등 어디를 둘러봐도 대리점 운영만 20년, 30년째라는 대리점주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노하우를 하나씩 품고 있다.

LG전자의 부천지역 대리점인 강수규 부천랜드 사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84년부터 대리점 사업을 시작해 이제 24년차다. 20년 노하우를 묻는 질문에 “비결? 글쎄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뻔한 모범답안(?)을 내놨다.

강 사장이 말하는 기본은 바로 고객 관리다. 부천랜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장을 방문한 고객을 유형별로 나눠 데이터베이스로 만든다. 그는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언제 어떤 판촉을 해야 할지를 결정한다”며 “판촉을 할 때도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기존 단골 고객을 위한 행사인지 목표를 정확히 한다”고 지적했다. 잠시라도 이 같은 관리에 소홀하면 당장 매출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설명도 잊지 않는다.

전국 매장을 이끄는 이들 노장들의 노하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인 셈이다.

제주의 한 지점장은 “오늘 우리가 한 매출은 어제 한 노력의 대가다. 오늘 노력하지 않으면 내일 받을 대가는 없다”라고 자신의 철학을 말했다. 그들은 현장에 있기에 여느 기업의 사장 못지않은 경영자이며 그렇기에 기업의 사장들만큼의 고심을 오늘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