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혁명은 시작됐다]1부-킬러앱을 찾아라③청소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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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로봇은 대중들에게 서비스 로봇에 대한 관심을 일으킨 일등공신이다. 지난 2000년대 초반 청소로봇의 가전시장 진입이 없었다면 요즘과 같은 로봇 붐은 애당초 기대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다양한 첨단로봇을 개발하는 지능형 로봇회사들도 실상을 들여다보면 청소로봇에 매출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서비스 로봇의 대표주자인 청소로봇은 크게 고급형과 보급형의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아이로봇의 룸바가 보급형 청소로봇시장을 석권한 가운데 한국의 후발기업들이 기능면에서 차별화된 고급형 제품으로 ‘로봇 한류’를 만들어 가고 있다.

 

 청소로봇 시장은 고급형 청소로봇의 시초 트릴로바이트와 대당 200달러의 초저가형 룸바로 대표된다.

 트릴로바이트와 룸바는 국내 지능형 로봇시장에 여러모로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했다. 초기 청소로봇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두 제품의 국내시판이 시작된 지난 2003년 외산 청소로봇의 판매량은 도합 4000대에 불과했지만 2004년 1만5000대, 2005년 3만5000대로 급격히 늘어났다.

 국내 가전사와 로봇회사들은 외산 청소로봇의 등장을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곧바로 미래 로봇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국산 청소로봇의 개발경쟁이 불붙고 정부의 로봇지원정책이 뒤따랐다. 덕분에 한국은 청소로봇 시장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올랐다. 미국, 캐나다에 이어서 한국은 지난해 세계 3위의 청소로봇시장이다. 그만큼 소비자들이 청소로봇에 대한 관심이 높고 업체간의 경쟁도 뜨겁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처음부터 트릴로바이트를 벤치마킹해서 자율 항법기능을 갖춘 고가의 청소로봇개발에 집중했다. 한국형 청소로봇은 룸바와 차별화된 고급취향의 디자인과 성능을 추구하게 된 것이었다.

 지난 수년간 로봇붐을 타고 많은 기업들이 특화된 기능의 청소로봇을 개발한 결과 룸바가 공략하지 못한 고급형 시장의 주도권은 유럽에서 한국기업으로 넘어왔다. 가전제품의 제조역량, 로봇에 대한 유별난 관심, 로봇기동에 유리한 아파트식 거주환경 등은 한국이 아시아의 로봇청소 강국으로 성장하는데 유리한 토양이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 청소로봇 시장은 4만대로 성장세가 한풀 꺾였고 소비자들의 관심도 다소 시들해진 느낌이다. 같은 시기 해외시장에서도 청소로봇판매는 침체기에 들어섰다. 아이로봇의 2006년 청소로봇 판매량은 약 70만대로 전년보다 20만대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청소로봇의 성장세가 주춤해진 이유는 간단하다. 평범한 소비자들의 눈에 비싸게 구입한 로봇이 기대만큼 청소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시판되는 청소로봇들은 위치인식의 한계로 구석구석 깔끔한 청소를 기대하기 힘들다. 또한 청소성능도 눈에 보이는 먼지만 대충 빨아들이는 수준이다. 얼리어댑터 성향의 소비층은 이같은 청소로봇의 특성과 한계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노동해방을 꿈꾸는 주부들의 높은 기대치와는 아직도 거리가 있다.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한 국내 로봇업체들은 올들어 한차원 높은 청소기능을 구현하는 신형 로봇제품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 하늘아이와 마이크로로봇은 바닥재의 얼룩을 쉽게 지우고 살균소독까지 하는 스팀청소로봇을 하반기에 시판한다.에이스로봇은 정해진 방만 골라서 청소를 하는 신형 청소로봇을 이달 중에 출시한다. 올해는 청소로봇의 위치인식에서도 획기적 진보가 예고된다. 미국의 에볼루션 로보틱스(Evolution Robotics)는 자체 개발한 초저가 위치인식센서를 이용해 현존하는 최고의 청소로봇을 제조해서 룸바의 아성에 도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이로봇도 유사한 항법기능의 신제품을 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소비자가 만족할 수준의 청소로봇 기술혁신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왠만한 가정마다 청소로봇이 보급되는 제 2의 빅뱅이 수년내 도래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앞으로 청소로봇시장은 내비게이션과 스팀 등 고기능 제품들이 한판 승부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청소로봇 가격도 지금의 룸바와 같은 보급형 제품수준으로 내려가면 청소로봇의 수요는 폭발적인 제 2의 성장기에 접어든다. 세계 청소기 시장은 연간 5000만대. 청소로봇의 비중은 현재 2%에서 2010년대 중반까지 10%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고령화 사회가 도래함에 따라 체력이 부족한 고령자의 가사노동을 대신할 청소로봇의 수요처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고급형 청소로봇의 시초, 트릴로바이트

 지난 2001년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사가 선보인 트릴로바이트는 최초의 상용 청소로봇제품으로 기록된다. 그전에도 일본과 미국의 기라성 같은 가전회사들이 청소로봇의 개발을 시도했지만 매번 실패를 거듭해왔다. 청소로봇 개발의 최대 걸림돌은 방안에서 로봇이 정확한 위치인식(localization)을 못하기 때문에 구석구석 제대로 된 청소가 어렵다는 것.

 일렉트로룩스사는 청소로봇의 위치인식 문제를 로봇의 방향전환을 알려주는 자이로(Gyro)센서와 복잡한 매핑 알고리듬을 통해서 어느 정도 해결했다. 이 회사가 만든 트릴로바이트란 제품은 청소버튼을 누르면 우선 벽을 따라 한 바퀴 돌면서 방안구조를 대충 파악한 다음 구역별로 먼지를 빨아들인다. 덕분에 쓸데없이 중복되는 청소구역이나 먼지가 남는 사각지역(Dead Space)이 크게 줄었다.

 당시로선 최고의 기술력과 물량공세를 퍼부은 대가로 트릴로바이트의 판매가격은 대당 200만원을 훌쩍 넘었다. 당연히 로봇판매는 극히 부진해서 부유층의 장난감이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회사의 첨단기술을 자랑하는 홍보효과로는 만점이었다. 가능한 최고의 기술자원을 투입하는 트릴로바이트의 고급형 로봇컨셉트는 이후 삼성전자, LG전자, 마이크로로봇 등 국내업체들의 청소로봇개발에 교과서처럼 활용되고 있다. 청소기능과 상관없이 번쩍거리고 화려한 국산 청소로봇들의 외장과 복잡한 기능은 트릴로바이트의 유산이다.

 

◇청소로봇 대중화 물꼬 튼 룸바

 2002년 9월 미국의 아이로봇사는 대당 200달러의 초저가형 청소로봇 ‘룸바’를 시장에 선보였다. 룸바는 지난 연말까지 250만대가 팔려나가 세계 청소로봇시장을 석권한 대히트상품으로 기록됐다.

 룸바의 성공비결은 대량생산과 저가전략으로 청소로봇시장의 주도권을 먼저 잡았다는 점이다. 룸바의 초기형 제품은 중국 내 제조원가가 대당 9만원을 넘지 않았다. 턱없이 낮은 원가 덕분에 아이로봇은 막대한 광고비용을 쓰면서도 미국가정에 일반 청소기와 비슷한 가격에 룸바를 공급할 수 있었다. 트릴로바이트와 같은 고급형 청소로봇에 비해 룸바는 구석구석 꼼꼼한 청소를 하는 항법기능에서 불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좁은 방에서 오랜 시간 자충우돌하다 보면 일부 구석을 빼고는 대충 청소가 되게 마련이다.

 아이로봇은 소비자의 고급취향보다 철저히 실용적인 관점에서 룸바를 홍보했다. “200달러짜리 로봇청소기에서 더 무엇을 바라는가.” 미국 소비자들은 완벽하고 비싼 청소로봇보다 저렴한 룸바를 써본 뒤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말하자면 룸바는 미국인의 사고, 생활패턴에 딱 맞춰서 개발된 미국형 가전제품이다. 실제로 룸바의 판매량에서 미국, 캐나다시장의 비중은 94%(2005년 기준)에 달한다.

 반면에 아시아, 유럽시장에서 룸바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귀족적인 것을 좋아하는 한국, 중국인에게 룸바의 수수한 디자인은 아쉬운 점이다. 일본인들은 다다미방에서 룸바가 제대로 청소를 할지 미심쩍어 한다.

 아무튼 아이로봇의 성공신화는 많은 경쟁사들을 자극해 로봇붐을 일으켰다. 하지만 아이로봇의 저가전략을 벤치마킹한 중국계 회사들은 청소로봇 시장에서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중국산 짝퉁 로봇조차 가격경쟁력에서 룸바의 아성을 따라잡기에는 힘이 부쳤던 것이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