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한 웅큼씩 빠진다. 구토는 점점 심해져 가고 얼굴은 비쩍 마르다 못해 곯아 가는 것만 같다.’
항암 치료를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는 대부분의 항암제가 암 세포 뿐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공격하기 때문.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만 했던 부작용이다. 암세포만 골라서 죽일 수 있는 표적치료가 가능하다면 항암 치료가 그렇게 무서울 것만 같지는 않다.
다행히도 표적치료는 그리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요 병원과 연구소 바이오 관련 업체들이 표적 항암 물질 개발에 앞다퉈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치료제 관련 주요 보고서들도 2015년이면 항암제의 주류를 차지 하던 세포독성 약물보다 표적치료제가 더 큰 규모를 형성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표적치료란=표적치료는 암세포의 혈관생성을 차단해 암의 성장을 막는 방식이다. 표적치료 물질의 원리는 암이 생성·활동에 관여하는 특이 분자 변화를 판단해 이것만 공격하는 치료물질이다. 일반 항암제는 암세포의 성장과 증식을 막아 죽도록 유도하는 효능이 있지만, 정상세포까지도 손상을 주기 때문에 원치 않은 부작용이 있는 단점이 있었다. 후유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암 치료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던 환자들에게는 표적치료란 더 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게다가 이들 치료제의 대부분이 먹는 방식의 약품이어서 이용하기도 편리하다.
물론 한계 점도 있다. 특정 표적 인자만을 공격하기 때문에 같은 종류의 암이라고 해도 특정 표적 인자가 나타나는 환자에게만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현재 개발된 표적항암제는 몸 속의 암세포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한계점이다. 암세포만을 죽인다기 보다는 기존의 암이 더 이상 크지 않고 치명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관리한다는 의미가 오히려 더 맞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표적 항암제인 글리벡의 경우에는 평생동안 복용해야 한다는 점이 문제이며, 만약 몸 속에서 내성이 나타났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표적치료 기술 어디까지 왔나=가장 대표적으로 상용화된 제품이 골수 백혈병에 쓰이는 글리벡이다. 폐암에는 ‘이레사’, 대장암엔 ‘얼비툭스’, 유방암엔 ‘허셉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개발한 제품으로, 위암과 간암 같은 동양에서 발병율이 높은 치료제는 이에 비해 상용화가 늦은 편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위암이나 간암 등 국내에서 발병율이 높은 암을 표적치료하기 위한 표적치료물질 개발에 한창이다. 최근 서울 아산병원이 ‘한국형 표적 항암제 개발’을 위해 보건복지부로부터 5년 동안 20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연구단을 출범, 표적 항암제 개발에 착수한 것이 한 예다. 연구단은 5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위암과 폐암, 유방암 치료를 위한 표적 항암제를 개발할 계획이다. 연구단은 표적 항암제를 개발하고, 이것이 실질적으로 환자 치료에 효과를 보일 수 있도록, 항암 물질을 암 조직에 정확히 전달하는 매개체도 동시에 개발한다.
최근 방광암억제 유전자 ‘렁스 3’을 활성화한 항암제 ‘아미나 엑스’를 개발한 충북대학교의 암종양 연구소도 방광암 뿐 아니라 위암이나 전립선암 간암 등에서도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임상실험에 들어갔다. 암세포를 공격하는 대신 암을 표적화해 이를 억제하는 유전자를 활성화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없다.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방광암 성장을 90% 이상 억제하는 효과를 거뒀으며, 임상실험에서도 부작용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 암치료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바이오 벤처 기업인 이큐스팜은 인체에 발생한 간암세포만을 없애는 차세대 표적 항암 치료제의 미국 특허를 출원했다. 이번에 특허를 출원한 물질은 건강한 세포를 손상시키지 않고 간암세포의 혈관 형성을 저해하는 푸마롤질 유도체의 작용기전을 갖고 있다.
위암과 간암의 표적 치료제 개발을 위한 타깃 유전자들도 발견되고 있다.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은 위암과 간암의 진단지표를 도출하기 위해 약 2500여 종의 후보 유전자를 발굴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 시장 조사기관에서 발표한 데이터를 보면 2015년 항암제 시장에서 표적치료제는 상위 20대 제품 중 11개(55%)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표적치료제는 지금보다 크게 성장해 세포독성 약물은 표적치료제에 선두 자리를 내줘야 할 것으로 보이며, 반면 세포독성 약물과 항호르몬 요법은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라고 말했다.
문보경기자@전자신문, ok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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