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걸음을 가도 만 걸음을 걸어도 난 언제나 제자리 걸음….’
가수 김종국이 부른 노래 ‘제자리 걸음’의 가사 중 일부다. 여기에 딱 들어맞는 사례가 있다. 바로 방송과 통신 융합 논의다.
시민단체와 업계로부터 발의된 방·통융합 논의가 시작된 것도 벌써 10여년째다. 최근 들어서는 그 논의가 부쩍 활발해져 정보통신부·방송위원회·문화관광부 등은 물론이거니와 국무총리 자문기구로 방송통신융합추진위(융추위)가 출범해 실무를 주도하고 있다. 방·통융합 논의가 시민단체와 업계에 이어 정부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논의가 확산됨에도 불구하고 논의 내용은 언제나 제자리 걸음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연초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논의가 진전되는가 싶었지만 아직 별다른 변화는 없다. 그 이유로는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혼란도 있겠지만 명색이 정부안임에도 불구하고 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정부 내에서도 여기저기서 나오는 등 논의 주체 간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기 때문이다.
각계의 입장은 이해한다. 유관부처 및 기관·시민단체·업계 등의 입장은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물론 이해득실 논쟁도, 부처 간 영역 다툼도 감안해볼 일이다. 그러나 이 시점의 융합 논의에서는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방·통융합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며 유럽·미국·일본 등지에서는 그 산물인 IPTV 서비스가 이미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6월을 기준으로 세계 IPTV 가입자 수는 295만을 넘어섰다. 1년 만에 두 배나 증가한 셈이다. 올해는 그 수가 1450만에 이를 것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기술발전 흐름에 우리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이러는 와중에 공이 마침내 국회로 넘어갔다. 정부안 처리를 위해 구성한 국회 방송통신특별위원회가 지난 2일 첫 회의를 연 것이다. 특위는 앞으로 방송통신위 설치와 IPTV 도입 등에 대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물론 특위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은 그동안의 제자리 걸음만큼이나 답답하고 험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에서 특위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국회는 답답함과 험난함을 풀어낼 수 있는 ‘정치적’ 힘을 가진 기관이기 때문이다.
권건호기자·정책팀@전자신문, wingh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