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36년 동안 우리는 빛을 잃고 살았다. 일본의 제국건설 야욕으로 인해 호롱불도 마음 놓고 켤 수 없는 길고 어두운 암흑의 세상을 지냈다.
일제는 도심이나 농촌, 산골 할 것 없이 전국을 샅샅이 뒤져 빛이 될 만한 모든 것을 수탈해갔다. 그것도 모자라 노동력을 수탈해갔고 종군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동남아 여성들을 전장으로 끌고 갔다.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역사적인 진실이다. 아직도 종군위안부 문제를 공식적으로 사과조차 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보며 참으로 한심스럽고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과하는 일도 제대로 하지 않는 일본이 과연 문명국가인지 의심스럽다. 빛을 잃은 우리 민족은 빛을 찾아 세계 각국으로 흩어졌고 우리 선조들은 온갖 고초를 겪은 끝에 빛을 되찾았다.
올해는 3.1 독립운동이 일어난 지 88주년이 되는 해다. 3.1운동 88주년을 맞아 ‘빛은 통일이다’는 화두를 제시하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빛이란 단순히 전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통신·에너지·도로망 등 인간 생활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고 경제를 부흥시키는 원초적인 힘을 상징한다. ‘빛이 통일’이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이 코웃음을 치거나 정신 나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북한에 컴퓨터 기술을 보급해 인터넷이 확대되면 핵개발이 가속화되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다고 염려하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이나 베트남 등 국가는 모두 밝은 빛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사회를 바꾸는 과정에 있다. 그것이 바로 경제력의 기반이며 민주사회로 가는 통로가 되고 있다.
지난 2000년까지만 해도 중국의 거리는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베이징 공항이나 주요 도로는 물론이고 일반인이 보통 이용하는 음식점 등 시설물 내부도 매우 어두웠다. 방문객을 위한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비행기가 연착해도 누구 하나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고 언제 출발할지 몰라 시간을 허비하는 게 다반사였다.
오랜 침묵과 고통의 세월을 살아왔던 거대한 중국에 빛을 가지고 들어온 이들은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고 있던 중국의 화교였다. ‘투자’라는 이름의 나눔이 시작되면서 중국은 깊은 잠에서 깨어났고 드디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신의주 맞은편 단둥의 압록강 강변에도 변화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어둡고 음산했던 강가에는 아름다운 공원이 조성돼 음악 분수가 솟아오르고 고층 아파트가 줄지어 들어섰다. 관광객을 태운 수많은 보트가 쉬지 않고 강변을 왔다갔다 하는 것이 이제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이들 보트는 신의주 강기슭에 방치된 낡은 배와 가끔씩 손짓하는 북녘 사람을 구경거리 삼아 돈벌이를 하고 있다.
중국 도시들은 이제 빛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다. 수도 평양도 이미 오래 전부터 제한송전을 해 어둡고 밤이 유난히 길다. 전력이 부족한 탓에 대부분 산업시설이 이미 생산능력을 상실했다.
평양 역사에는 증기기관차가 다시 등장해 기적을 울리며 역사를 드나들고 있다. 빛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전기통신·도로망 등 산업의 부흥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초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지난 7년 동안 중국이 새로운 역사를 쓰는 동안 남북한은 과연 무엇을 했나 반성해야 한다. 투명성을 강조하며 시작된 끝없는 ‘퍼주기’ 논란과 남북, 남남 간 갈등이 그나마 있던 빛을 차단했고 결국 북의 미사일 발사와 핵 위기를 초래했다.
이제는 빛을 나눠야 한다. 쌀과 비료를 지원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바로 빛을 나누는 일이다. 빛을 나누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노하우를 나눠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신뢰를 구축하는 최상의 길이며 통일의 초석을 다지는 길이다.
◆임완근 남북경제협력진흥원장 ikea21@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