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화제를 몰고 다녔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차세대 슈퍼컴 주요 사업자 선정이 일단락됐다. 햇수로 2년을 끌어온 사업이지만 사업자를 선정하는 KISTI나 프로젝트 입찰자의 체감연도수는 10년쯤은 될 것이다.
600억원이라는 초대형 프로젝트, 세계 10위권 슈퍼컴 성능 목표라는 화려한 숫자 뒤에 다양한 변수로 연기와 재입찰, 재협상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드라마만큼이나 극적인 반전도 있었다. 관계자들의 남모를 고생도 대단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프롤로그’ 혹은 ‘시즌1’에 불과하다. KISTI가 그리는 국가 슈퍼컴의 장밋빛 미래를 풀어 나가기 위한 준주연과 조연이 결정되고 과학계에 등장인물들이 소개됐을 뿐이다.
실제로 슈퍼컴을 취재하면서 만난 다수의 과학자는 “KISTI가 이번 슈퍼컴 4호기를 통해 구체적인 과업을 쌓아야지 그렇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성능의 슈퍼컴이라도 도입 명분을 스스로 잃어버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 슈퍼컴 사업의 시즌2에는 ‘스타 스토리’가 나와야 한다. 한국이 슈퍼컴 관련 선진 기술을 확보하고 KISTI 슈퍼컴을 활용해 바이오·나노 분야의 큰 숙제를 풀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 것이다. 국가 슈퍼컴의 진정한 주연급 스타는 거기서 탄생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KISTI와 슈퍼컴 사업자의 심도 있는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업자로 선정된 한국썬과 한국IBM 그리고 숨은 조력자인 AMD는 제안서에 예고한 대로, 실제 슈퍼컴 구축과 운용 단계에서 실질적인 ‘윈윈’ 모델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KISTI 슈퍼컴(3호기) 사업은 ‘절반의 성공’이라는 아쉬운 평가가 있었다. 3호기 슈퍼컴으로 생명공학을 위한 고성능 컴퓨팅 지원센터를 마련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사실상 당초 약속을 지키지 않은 셈이다.
1테라플롭스는 1초당 1조회 부동소수점 연산이 가능한 성능을 말한다. KISTI 슈퍼컴 4호기 이론 성능은 무려 280테라플롭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 성능은 아직 제안서에 적힌 ‘숫자’에 불과하다. 이제 시작일 뿐이고 바라보는 눈들 또한 더욱 엄정한 잣대를 준비할 것이다.
◆류현정기자·솔루션팀@전자신문, dreams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