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현대인을 일컫는 ‘글루미족’이 화제다. 예전만 해도 ‘혼자’라는 이미지는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성격상 문제가 있는 부정적인 면이 강했지만, 요즘에는 새로운 문화 코드가 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혼자’를 위한 공간, 메뉴 등 마케팅 전략이 속속 등장했으며 글루미족은 새로운 구매층으로 떠올랐다. 혼자인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문화 트렌드를 형성하고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는 게임에 대한 시각과도 상통한다. ‘게임’ 하면 중독·폐쇄성·오타쿠 등을 떠올리며 교육·정서적 측면에서 부작용만을 바라보기 쉽다. 이 때문에 현재 부모 세대는 자녀들이 게임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 같은 인식은 우리나라 e스포츠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장벽이 되고 있다. 한국이 e스포츠의 세계 중심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지만, 국민적 인식의 장벽을 넘지 못한 탓에 게임의 발전 가능성과 잠재력에 비해 투자가 부족하다. 이 시점에서 경제·산업적 측면에서 게임의 가치 재평가가 이뤄져야 하고 인식도 전환돼야 한다.
한국은 세계 시장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게임 지존’이다. 2006년 국내 게임 시장 규모가 1조8140억원으로 급성장한 데 이어 올해는 2조195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국내 대기업 중 상당수가 게임단을 갖고 있고, 게임대회에 투자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인 IT 기업들 또한 스폰서로서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자함으로써 게임 대회를 후원하고 장려한다. 이는 곧 미래 잠재고객들에 대한 마케팅 활동이 되기 때문이다.
월드사이버게임즈(WCG)는 이미 70여개국에서 700여명의 게이머가 모이는 세계 최대 e스포츠 페스티벌로 성장했다. 나는 매해 WCG 호스트 시티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자기 도시에 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올림픽처럼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어느 국가에서는 부통령이 직접 나와 환대하며 대회 유치 의사를 적극 피력하기도 한다. 해외 주요 미디어에서 WCG와 급부상하는 게임대회 문화를 보도하고, 한국 프로게이머를 주제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루기도 했다.
많은 게임대회가 인종과 문화가 다른 또래들로 하여금 ‘게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교류하고, 정정당당한 승부를 통해 패배를 인정하고 남의 승리를 기뻐할 줄 아는 스포츠맨십을 키워주고 있다. 선수촌처럼 같은 숙소에 많은 선수가 합숙하면서 더불어 생활하는 것, 함께 어울리는 것을 배우며 조화와 균형의 묘를 체득하도록 하는 기회도 준다.
게임이 자칫 폐쇄성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하며 국내 e스포츠 산업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가고, 일부 프로게이머는 세계적인 스타로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렇듯 게임과 e스포츠는 세계의 젊은 디지털 세대를 하나로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해내고 있고, 국위선양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e스포츠 중심에 한국이 종주국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들이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온라인은 그 확장성이 실로 무한하다. 온라인을 사용하는 곳은 컴퓨터나 게임방 정도로 한정돼 있지만 왕따나 오타쿠 같은 사회 부적응자를 양산해 내는 어두운 음지로 보기는 어렵다. 싸이월드나 각종 블로그도 그 사이버 공간과 접속하는 공간과 수단은 내 방, 내 컴퓨터지만 그것을 매개로 다수와 커뮤니케이션하기 때문이다.
게임을 통해 전략적 사고나 두뇌 훈련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입증된 바 있다. 예전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에서 일반인의 뇌와 프로게이머 서지훈의 뇌를 분석한 적이 있다. 서지훈의 뇌는 추리와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전두엽과 본능과 기억력을 통제하는 대뇌 변연계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반면에 일반인은 시각을 통제하는 뇌 부분만 활성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게임의 역기능만으로 판단한 시각이 e스포츠 산업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게임을 바라보는 부모 세대들의 시각이 바뀌고 아이들을 올바로 지도할 수 있다면 게임을 하나의 놀이 문화, 나아가 국가의 주력 산업의 하나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게임 시장에 대한 더 활발한 투자도 함께 이루어질 것이다. 훌륭한 인재가 많이 모여 국가 경제에 큰 몫을 차지하는 든든한 효자 산업이 될 e스포츠의 미래도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독’이 되는 게임이냐 ‘득’이 되는 게임이냐, 이를 수용하는 다수의 인식과 태도가 바뀌어야 할 때다.
◆오원석 ICM 부사장 wonsukoh@icm2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