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얼마 전 불쾌한 경험을 했다. 모 은행 지방지점 창구에서 자기앞수표를 출금하는 데에 1000원의 수수료를 요구받았던 것. 기존 이용하던 지점에서는 수표 발행 수수료가 없었기 때문에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은행 간판을 달고 있는데도 지점마다 수수료 정책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이 은행이 재작년 대대적인 수수료 인하 방침을 밝혔던 터라 고객으로서 속은 기분이었다. 은행 직원은 “수표 발행 수수료는 각 지점에 재량권이 있다”면서 “고객 유치 전략의 하나로 지점 여건에 따라 면제 여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은행권에 수수료 인하 바람이 불고 있다. 시중 은행이 사상 최대 수익을 올리면서도 ‘고객 모시기에 소홀하다’는 지적을 의식한 것이다. 하지만 기자의 경험처럼 아직도 ‘숨어있는 수수료’가 허다하다. 엊그제 국민은행의 수수료 인하 발표도 상징적인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은행 관계자는 “사실 파격적 인하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존 국민은행 수수료가 타행에 비해 비쌌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행 은행권에서 가장 낮게 맞춘 정도”라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약간의 조정은 있었지만 가장 수수료가 저렴했던 은행과 비교할 때 최대 100원 정도 차이나는 것에 불과하다”며 “고객들이 인하 효과를 크게 체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이래 은행 수수료는 36%나 올랐다. 같은 기간 전체 서비스 물가상승률보다 20%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또 금융감독원은 국민·우리·신한 등 5대 은행이 수수료 수입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2001년 8502억원에서 2004년 2조4418억원으로 세 배가량 늘어났다고 밝혔다. 일부 은행이 수수료를 인하한 2005년에도 여전히 2조원이 넘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면서도 고객에게 비용을 지나치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은 지금 자본시장통합법과 한미 간 FTA 등으로 다른 금융권은 물론이고 선진 금융시장과 경쟁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해외진출, 투자은행(IB)으로의 도약 등 거창한 간판을 내달기에 앞서 대고객서비스 질을 높이는 게 급선무다. 수수료 인하 바람이 고객을 만족시키는 진정한 선진 금융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황지혜기자·정책팀@전자신문, got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