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 KT 유선망을 빌려 시내전화 시장에 진출하고 시내전화+3G 이동통신 상품을 묶어 15% 할인한 가격에 판매한다.’ ‘KT가 KTF의 3G 이동통신 재판매 상품과 인가역무에서 해제한 초고속 서비스 그리고 와이브로를 묶어 20% 할인된 상품을 내놓는다.’
당장은 재판매·MVNO 규정 미비로 불가능한 일들이지만 향후 몇 년 사이에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얘기다. 정부가 15일 전격 발표한 규제완화 로드맵은 통신시장의 무한경쟁 시대를 알리는 예고편이나 다름없다. 궁극적으로 유선업체도 무선시장에 진출하고, 무선업체가 유선시장에 마음대로 넘나드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노준형 정보통신부 장관은 15일 기자간담회에서 “통신시장 활력과 소비자 후생을 위해 통신서비스 간 경쟁 제약요소를 점차 없애 나가겠다”며 규제완화를 통한 통신시장 경쟁 촉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유무선 의미 점점 사라져=앞으로 유무선 서비스나 사업자 구분은 의미가 사라질 전망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이동통신 업체가 유선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망이 없는 사업자가 이동통신 업체의 망을 빌려 무선서비스를 하는 MVNO도 일반화했다. 직접 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다른 업체의 통신상품을 묶어 결합판매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에 반해 그동안 국내 사업자들은 유선과 무선은 물론이고 유선 내에도 시내·시외·국제·초고속 등 서비스별로 역무를 구분해 진입을 엄격히 규제받았다. 유선업체인 KT·하나로텔레콤·LG데이콤 등은 설령 무선망을 보유했다고 해도 무선사업을 할 수 없다. 사업권을 별도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SK텔레콤·KTF·LG텔레콤 등 이동통신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정통부의 기존 유효경쟁 정책으로 제한된 사업자가 제한된 영역에서만 통신사업을 하도록 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구도다.
그러나 앞으로는 기간사업자로 한번 지정되면 다른 기간역무에 포함되는 모든 서비스를 진행할 수 있다. 다만 유선에서의 무선 진입은 전파법 개정 등의 법제화 이슈가 있어 현실적으로는 당분간 제약이 따를 전망이다.
◇무한경쟁 시대 돌입=유무선 경쟁이 촉진되면 사업자 구도나 시장 판도에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지금까지는 유선과 무선 각각에서 지배적 사업자의 과도한 영향력 확대를 막고 후발사업자들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비대칭 규제를 적용해왔으나 앞으로는 불가능하다. 후발이든 선발이든 경쟁을 통해 가입자를 확보하고 매출을 늘리는 시장논리가 철저하게 관철될 것으로 보인다.
동등접근권 등의 장치가 있기는 하지만 선후발 사업자 간 양극화 우려도 나왔다. 그동안 비대칭 규제 혜택을 누려온 후발사업자들은 한계 없는 경쟁의 상황에 놓이게 됐다.
사업자 간 이합집산도 활발히 이뤄질 전망이다. 벌써부터 하나로텔레콤이 3G 재판매를 하겠다고 나서 파란을 일으켰다. 컨버전스 시장을 두고 유무선 업계는 물론이고 케이블업계와 비통신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휴·협력과 인수합병 등이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 통신시장의 진정한 변화는 이제 시작이며 사업자들도 새 환경에 놓이면서 초기에는 고통스러울 것”이라며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업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조인혜기자@전자신문, ih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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