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리스 업체들 `속앓이`

팹리스 업체들 `속앓이`

반도체설계(팹리스) 업계가 ‘같기도’ 때문에 이래저래 피해를 입다. 팹리스는 특성상 ‘제조업종 같기도’ 하고 ‘소프트웨어 업종’ 같기도 하지만 양쪽에서 모두 버림받는 박쥐 신세로 전락, 말못할 속앓이를 하고 있다.

한 팹리스 업체 A 사장은 칩 생산비에 필요한 5억 원을 대출받기 위해 최근 중소기업청의 지원프로그램을 이용하려했지만 포기해야 했다. A 사장은 몇 번이나 훑어 보았지만 중소기업 사업자금 대출 지원대상에 팹리스 업종을 찾을 수 없었다. 담당자에게 팹리스 업종을 열심히 설명해보았지만, 항목에 없어 불가능하다는 대답만 들었다.

팹리스 업종은 반도체 설계만 하고 생산은 반도체수탁생산업체(파운드리)에 맡긴다는 이유로,즉 직접 생산을 하지 않기 때문에 중기청의 제조업 분류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규정상 제조업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아웃소싱으로 생산을 하더라도 원자재는 직접 조달해야한다.

더욱 억울한 것은 팹리스 업체들은 웨이퍼를 직접 구매해서 파운드리에 맡기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파운드리 사업 관행상 웨이퍼는 파운드리 업체가 직접 조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팹리스 업체 한 CEO는 “중소기업청이나 산업은행을 통해 대출을 받으려면 팹리스 해당사항이 없어 무척 힘들다”며 “이에 비해 큰 문제는 아니지만, 법인 등록할 때에도 구청에서 분류를 어떻게 해야할 줄 몰라 헤맨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팹리스 업계의 ‘같기도’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팹리스 업체들은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판매만 하는 유통업종으로도, 또 하드웨어 상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업종으로도 분류되지 못하고 있다. 팹리스 업계는 이로인해 지난해 세금 폭탄을 맞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마저 겪었다.

연구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해 현행법은 기업 연구개발비의 15% 또는 전년 대비 연구개발비 증가액의 50% 중 규모가 큰 부분에 대해 세액 공제를 해주고 있다. 팹리스 업계는 제품 생산에 들어가기 전 완성도를 테스트하기 위해 마스크를 떠 본다. 팹리스 업계는 마스크를 떠 보는 것도 연구개발의 일환이므로 이를 당연히 연구개발비라고 간주해왔다.

그러나 국세청은 이에 대해 연구개발비로 인정할 수 없다며 지난해 갑자기 세금 추징에 나섰다. 이 때문에 팹리스 업체들은 그 동안 세액공제를 했던 금액을 한꺼번에 납부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코아로직이나 엠텍비젼과 같은 큰 팹리스 업체들의 경우 한 꺼번에 내야할 세금이 10∼20억 원에 달해 순이익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코아로직 관계자는 “한꺼번에 공제를 받았던 세금을 다시 내면서 4분기 순이익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팹리스 업계는 설계의 완성도를 테스트하기 위해 마스크를 제작하는 부분에 대해서까지 연구개발비 혜택을 주지 않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팹리스 업계는 실제 생산에 쓰이는 마스크를 뜨기 전에 적어도 두 세번까지 테스트용 마스크를 떠본다. 양산이 잘못될 경우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팹리스 특수성을 감안해 생산용 마스크까지도 연구개발비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에서 1000억 원대 팹리스 10개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시스템반도체 분야 강화를 위해 팹리스를 키워야 한다고도 하는데, 아직까지 분류조차 없는 것을 보면 착잡한 생각만 든다”고 덧붙였다.

문보경기자@전자신문, okm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