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격차 해소 성공사례를 찾아서](1)경남 산청군 호리마을

[정보격차 해소 성공사례를 찾아서](1)경남 산청군 호리마을

 초고속 인터넷 이용과 PC보급률에서 세계 1위의 정보통신 강국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지만 지역간, 계층간 정보격차는 여전히 크다. 정보화마을 지정 등 정부 주도의 각종 정보격차 해소 사업과 사랑의 PC보내기 등 민간 차원의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산간 벽지 및 도서지역의 주민들에게 PC사용과 인터넷 이용은 아직까지 먼 나라 남의 일처럼 여겨지고 있다. IT강국의 그늘인 정보격차는 어디서부터, 어떤 방법으로 좁혀야 하는가. 지역간, 계층간 정보격차 해소 노력의 성공사례를 찾아 또 다른 차원에서 접근 가능한 정보격차 해소 방안을 5회에 걸쳐 짚어본다. 그 첫 번째로 산간 고령화 마을 노인정보화의 성공사례로 주목받고 있는 경남 산청군 호리마을을 찾았다. <편집자주>

 

 “자주 좀 와줬으면 좋겠어요. 배워도 금새 잊어먹지만 배울 때 만큼은 즐겁고 재미납니다. 요즘엔 컴퓨터로 가요 듣는 재미에 산다니까요.” 경남 산청군 단성면 호리마을 이장 김정덕씨(68)는 틈만 나면 PC를 켜고 음악CD를 넣어 좋아하는 트롯 가요를 듣는다. 흥겨운 가요를 듣는 재미도 재미지만 무엇보다 가요가 담긴 CD를 PC에 넣고 마우스로 클릭해 원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기까지 과정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재미다.

 이 마을 60∼70대 노인들은 밭일을 마치고 나면 삼삼오오 빈집에 모여 PC를 통해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PC를 매개체로 함께 어울리는 일이 어느새 마을 주민 공통의 여흥 문화가 됐다.

 부산체신청 주도의 지역 및 계층간 정보격차 해소 사업이 좋은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마을인 이곳은 주민의 절반 이상이 60대 이상 노인들이다. 몇년 전만 해도 인터넷은 커녕 PC를 사용하는 가구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정보화의 오지 중 오지였다.

 마을에 ‘PC사용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7월 부산체신청이 조직한 ‘어르신 IT봉사단’이 찾아오면서부터. 물론 이전에도 인근 학교의 뜻있는 학생과 교사들이 마을 주민을 위해 무료로 PC이용 교육을 했지만 그다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생소한 PC라는 기기앞에서 노인이 대부분인 피교육자들은 머뭇거리기 일쑤였고, 궁금한 것이 있어도 젊은 학생이나 교사에서 묻기 어려웠다. 이러한 벽을 허문 것이 ‘어르신 IT봉사단’이다.

 어르신 IT봉사단은 이름 그대로 55세 이상(주로 60대)의 중·노년층에서 PC 다루는 것에 능숙한 사람을 뽑아 만든 자원봉사단이다. 비슷한 연배의 노인이 와서 PC사용 방법을 알려주니 알아듣기도 쉽고, 모르는 것도 스스럼없이 물어볼 수 있어 좋다는 것이 호리마을 노인들의 얘기다. 김정덕 이장은 “학생들이 교육시켜줄 때는 멋쩍어서 몰라도 묻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르신 IT봉사단은 나이도 비슷하고 그래서인지 우리가 무엇을 어렵게 느끼는지 잘 알고 말을 건네기도 수월하다”며 웃었다.

 ‘집에 잠자는 PC를 무료로 수리해준다’는 말에 하나둘씩 모여든 마을 주민 사이에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교육시켜준다’, ‘편하다’, ‘친절하고 재미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봉사 활동 둘째 날부터는 정보화교육장으로 사용하는 지리산고등학교 실습실이 모여든 주민들로 발디딜틈이 없이 꽉 찼다. 이영자씨(동부산대학 어르신IT봉사단장)는 “처음 이곳에 봉사활동을 왔을 때 과연 몇 분이나 열의를 가지고 교육에 참가할까 걱정했다. 하지만 첫 날 교육 이후 입소문이 퍼져 둘째 날 이후부터 마을 주민이 대거 몰렸고, 6박7일의 일정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였다”고 기억했다. 마을 주민의 교육열에 감동을 받은 봉사단, 그리고 봉사단의 남다른 조직구성에 친밀감을 느낀 마을 주민들은 서로 정기적인 방문활동을 약속하기에 이른다.

 특히 봉사단 활동을 계기로 이곳 호리마을에는 마을 특산품을 판매하는 인터넷쇼핑몰이 구축돼 이웃 마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도농간, 계층간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활동이 봉사 지역과 계층의 소득증대로 이어져 지역간, 계층간 소득격차 해소에도 기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실장터(http://jatree.com)로 이름 붙여진 호리마을 인터넷쇼핑몰은 올 초부터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지난달에는 지역 특산품인 딸기, 곶감 등을 주민이 직접 사진으로 찍어 상품 특징, 가격 등과 함께 올려 불과 하루이틀 사이에 매진되는 성과를 거뒀다. 마을 주민들은 현재 상당히 고무된 상태다.

 자실장터 개설에 앞장서온 호리마을 청년회 정상준씨(43)는 “전자상거래라는 것은 엄두를 못냈는데 우리 마을만의 쇼핑몰을 만들고 마을 특산품을 팔 수 있는 길이 열려 너무 기쁘다”며 “주문 및 결제 방법까지 체계화해 산청군 최고의 쇼핑몰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과 IT봉사단은 올 상반기까지 DB구축 및 일반 쇼핑몰과 같은 수준의 주문 결제 시스템을 갖춰 나갈 계획이다.

 봉사단 활동에 대한 지역 주민의 호응이 높고 인터넷쇼핑몰 개설을 통해 소득증대로까지 이어지면서 뒷짐지고 있던 지자체도 본격적으로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부산체신청과 산청군, 그리고 동부산대학은 지난 15일 산청군청에서 ‘지자체-기관-대학간 협약식’을 갖고 지역 주민을 위한 정보격차 해소에 보다 적극적인 협조와 노력을 기울여 나가기로 했다.

 부산=임동식기자@전자신문, dslim@

◆호리마을서 칭송받는 `어르신 IT봉사단`

 노령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는 산간 오지 및 섬마을의 정보격차 해소에 혁신적인 매개체로 떠오른 ‘어르신 IT봉사단’은 부산체신청 주도로 지난해 5월 결성됐다. 현재 3기까지 132여명의 어르신이 부산·울산·경남지역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노인, 장애인, 농어촌 및 도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꾸준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발대식 후 지난 2월까지 14개 지역 및 단체를 돌며 75대의 PC를 무료 제공하고, 300여대의 PC를 무상수리했으며, 총 104명의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PC사용 및 워드, 인터넷 이용 교육을 실시했다.

 어르신 IT봉사단은 일정 수준의 IT 지식과 가르침의 열정을 지닌 55세 이상의 사람들로 조직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PC와 인터넷 활용에 능숙한 20∼30대가 아닌 중년 이상의 ‘어르신’이 주축이기 때문에 정보격차 해소의 주 대상인 고령층에 쉽게 다가설 수 있고, 이에 따라 도시 노인층은 물론 산간벽지 고령화 마을의 정보격차 해소사업에 빠르게 흡수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처음에는 한 손가락만 쓰는 독수리 타법으로 PC를 접하기 시작한 상당수의 봉사단원이 본격적인 활동을 거치며 PC를 능숙하게 다루게 됐고, 윈도 및 한글작성 등 기초 지식을 넘어 엑셀, 홈페이지, 동영상, 손자 손녀에게 사진 보내기 등 그 실력이 날로 향상되고 있다. 대외 활동은 물론 내적으로도 가장 바람직한 정보격차 해소의 방안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김윤중씨(64·동부산대학 IT봉사단원)는 “은퇴 후 솔직히 지루한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PC를 배웠는데 배우는 것보다는 가르치는 것이 더욱 재미있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는 것을 느꼈다”며 IT봉사단 활동의 즐거움을 표현했다.

◆인터뷰-신순식 부산체신청장

 “산청군을 세번째 방문하면서 올 때마다 살기 좋은 고장이라 느꼈는데 매년 인구가 줄고 있다니 안타깝습니다. 부산체신청과 산청군, 동부산대학의 협력으로 지역 정보격차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인터넷쇼핑몰 구축 등 마을 소득증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갔으면 합니다.”

 신순식 부산체신청장은 그간의 어르신 IT봉사단 활동과 이번 산·관 협약 등 정보격차 해소 노력이 지역 주민에게 희망을 주는 계기이자 동력으로 작용하기를 바랐다.

 그는 “농촌 지역의 정보화 교육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교육장이 부족하고 가정에 컴퓨터도 많지 않고, 또 있어도 고령의 어르신들이 접근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지적한 후 “그럼에도 이번 호리마을의 쇼핑몰 구축 사례는 조그만 관심에서 출발했지만 열정을 갖고 활동하면 누구나 PC를 이용할 수 있고 경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며 호리마을 주민의 교육 열정과 어르신 IT봉사단 활동의 결과를 높이 평가했다.

 이어 신 청장은 “세계가 인정하는 IT강국이지만 아직까지 지역간, 연령간, 장애 유무에 따른 정보격차가 큽니다. 매년 줄고는 있지만 국민정보화 교육, 사랑의 PC 보내기, IT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정보격차 해소에 지속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며 “올해는 농촌 마을 어르신들이 PC사용법을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PC보급 등 농촌 정보화교육 지원에 역점을 둘 계획”이라고 말했다.